옛날 생각.

요 며칠새 10대 후반에서 20대 시절 생각이 이따금씩 난다. 길어긴 출퇴근길에 옛 노래 -그리 옛날도 아니지만-를 들어서 그런건지, 아님 그때를 그리워하는건지 모르겠다.

지난 추억은 뇌의 조작으로 다 예뻐지고 좋게만 보이는 법이라더니. 그래서 그 때 그 시절을 냉정하게 떠올려봤다. 그 때도 미래걱정, 관계걱정, 살아갈 걱정 등에 매여 살던건 마찬가지였다. 불투명했고 불안했고 지금처럼 얄팍하고 가벼웠다.

그러다 추억하는 이유를 한가지 머릿속에서 찾았는데, 뭔가 터놓고 얘기할 사람들이 줄어들었다는 것. 그런거 보면 그 때는 남의 삶에 신경쓰고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해주고 할만한 시간이 있었다는 거니까, 지금보단 여유가 있었다는 이야기 같다.

어쨌든 의미없는 추억여행은 그만두고 생각하고 기도..하자. 그리고 글로 생각을 정리하자. 그렇지 않으면 괴물이 되어간다. 스스로 여유를 찾자. 그렇지 않으면 정말 괴물이 될거 같다. 이미 되었거나.

[M] 킬링디어; The Killing of a Sacred Deer

복수의 복수를 낳는 신화. 

우리의 지성도 결국 생존본능 앞에서 얼마나 무기력한가. 

권력자도 절대적 선택의 순간에 얼마나 우매한가. 

그 우매함에 굴복해야 하는 현대인의 숙명. 

기계화되는 인간.  우리의 구원은 어디에 있는가. 

인간으로는 해결되지 않을 답이 정해진 영원한 숙제. 

이성을 무시하니 논리적일수 없는 영화. 평가절하. ★★

꿈.


꿈을 꿨다. 꿈에서도 어제 낮처럼 계속 면담을 했다. 같은 말을 반복해야 했다.

“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그런데 이미 신중하게 결정했고 기회를 보고 모험을 하려 합니다.”

“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그런데 이미 신중하게 결정했고 기회를 보고 모험을 하려 합니다.”

꿈에서도 기진맥진했다.

 

자다깼고 다시 잠들었다.

 

유시민 작가가 등장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이야기 말미에 유작가가 말했다.

“나도 평소에 소설이란걸 한 번 써보고 싶었는데… 우리 릴레이 연재해볼까요?”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연재 주기를 정하고 내가 먼저 써보기로 했다. 주제와 인물을 정하는 생각에 순간 신이 났다.

 

그러곤 예상대로 알람소리에 잠이 깼다. 하.

그래도 후반전 꿈이 설레는 꿈이어서 잘됐네 싶었다. 2:1로 뒤집는 역전골을 넣은 기분.

내일일은 알수가 없지.

오랜만에 쓰는 지극히 개인적인 일기.

삼일 내내 앓다가 약이 들기 시작하면서 정신을 차렸다. 그러다 쓸데없는 창작욕이 일어났다. 돈을 꾸역꾸역 내면서도 관리도 제대로 안한 사이트에 들어왔다.

최근에 본 영화 리뷰를 썼다. 리뷰를 쓰는 관점에 대해 늘 헷갈린다. 이 헷갈림은 홈페이지의 속성 때문이기도 하다. 아마 직업적 평론가 내지는 누군가에게 의뢰를 받고 썼다면, 영화 자체에 대해 제3자 시점에서 뜯어내고 곱씹어보고 썼을 것이다. 그러나 내 홈페이지 올리는 글이기 때문에 그렇게 쓰는 것은 뭔가 어색하다. 그래서 나에게 투영되고 적용된 영화에 대해 써보려고  시도한다. 그러다보니 이도저도 아닌, 뭔가 어정쩡한 리뷰가 써진다. 차라리 다음부터는 평론가투를 흉내내서 쓰고, 개인적인 감상은 따로 분리해봐야겠다. 근데 그럼 여기에 올리는 의미가 있나 모르겠다.

 

지난 몇 주간 알수가 없는 내일들을 보냈다. 그러다 마음과 몸이 축났다. 그리고 이런저런 계기로 개인사에 조만간 변화가 일어날 것 같다. 지난 일 년간 몰두했던 것들을 버려야 했고, 희망고문일지 다가올 미래일지 모르는 보이지 않는 기회를 버려야 했다.

변화를 결정하게 된 이유를 정리해보고자 한다. 사실 변화가 일어난 것도 내가 능동적으로 택하고자 했던 것은 아니어서 궁색한 측면이 있다. 다시 말을 바꿔보면서 변화를 결정하는데 도움된 사실들이라는 표현이 적합할 것 같다.

  • 물들어감. 내가 생각하는 리더상과 전혀다른 사람들과 일하면서 그 사고방식이나 행동양식, 커뮤니케이션 방법을 알게 모르게 닮아갈까 두려웠다. Give and take 식 성과보상, 눈에 보일때만 잠깐 주어지는 당근, 평소하는 말과 다른 의사결정, 대결적 의사소통 방식, 본질을 벗어난 것에 대한 지적, 지나친 섬세함의 함정.
  • 삶의 균형이 무너짐. 무엇이 문제였는지 차근차근 돌이켜보려고 하는데, 대충 정리해보면 일의 끝이 없었다. 나는 야근하거나 주말에 나와서 일하는걸 지극히 싫어한다. 그래서 일이 오면 대충 데드라인을 정하고 그에 맞춰서 일을 한다. 그런데 지금 하는 일은 왠지 모르게 집에서까지 신경써야 했고, 주말에도 내 생각을 괴롭혔다. 그러니 일의 능률이 오를리 없는 것은 당연했다. 게다가 가족생활까지 영향을 미치니 삶의 여유가 모두 없어진 느낌. 나는 한량기질이 있어서 책도 보고 음악도 듣고 영화도 보고 사람도 만나고 해야 에너지가 솟는데 그런 것 생각해볼 겨를도 없이 지나니 몸이 축났다. 그래서 최근 3일 그런 것들이 터진게 아닐까 싶다.
  • 그리고 ‘때’. 뭔가 상황이 만들어지는 모습들을 보게 되었다.  이게 결정적으로 변화를 결정하는데 마침표를 찍어주었다.

 

그럼 이 참에 반대로 현재에 머물러야 한다고 생각했던 몇가지 이유도 정리해보고 싶어진다.

  • 일에 대한 책임과 같이 일하는 후배들에 대한 걱정. 혼자 거의 실무를 담당하고 있었고, 아래 신입사원이 고군분투하고 있었기에 지금 빠진다는 것이 신의에 맞는가? 라는 생각을 했었다.
    -> 이건 때가 풀어줬다.
  • 지지해준 사람들에 대한 보답. 내가 이 팀에 속해있는 걸 돌이켜보면 누군가 나를 내 됨됨이보다 잘봐주고 인정해주어 지금의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부족한 실력, 경험을 ‘지금까지 그랬듯 하면 잘할거에요’라는 믿음을 보내주어 여기 있을 수 있었다. 이건 앞으로도 생각이 날 것 같다. 감사함으로, 아쉬움으로.
  • 사람들. 일을 할 때 무엇보다 아는 사람들이 있어서 뭘 하든 편할 수 있었고, 어느 층을 가든 농담 한마디 건넬 사람이 있어서 좋았다. 도움을 참 많이 받았고 다들 좋게좋게 봐주셨다. 만약 남아있었다면 이 분들 덕분에 한결 수월하게 일을 할 수 있었을 것이고 다른 기회가 생겼을지도 모르겠다.
  • 반성. 많이 기도하지 못했다. 만약 매일 의지했다면.

 

새로운 변화안에서도 내일일은 알수가 없다. 그래서 기도가 먼저다. 의지하지 않으면 바로 무너진다.

 

[M] 어느 가족; Shoplifters; 万引き家族 감상기

! 스포일러 주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작품. 2018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영어제목도 그렇고 원제는 <좀도둑 가족(万引き家族)> 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 개봉하면서 <어느 가족> 개명을 했다. 좀도둑 가족이라고 명명하는 순간 왠지 모르게 코미디영화처럼 비춰질 수 있어서 바꾼게 아닐까 싶다.

이해는 되지만 아쉽다. 영화는  ‘가족의 본질’에 대해 묻고 대답하는 <어느 가족>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도둑질’이 이야기의 중심을 관통하기 때문이다. ‘도둑질’로 가족 공동체가 형성되었고, ‘도둑질’로 가족 공동체가 연명한다. 그러다 ‘ 도둑질’이 발각되자 가족 공동체의 붕괴가 일어난다.

이 영화를 보는 중간중간 방치된 아이들이 가족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그린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아무도 모른다(2004)>가 생각났다. 꼭 아이들이 할머니, 성인, 청소년, 어린이로 확장된 가족으로 재탄생한 느낌을 받았다.

영화는 혈육이 아니지만 이렇게 따뜻한 가족 공동체가 있다면 어떨까? 라는 질문을 던지는 동시에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들에 대한 한계를 지적한다. 각자의 속사정과 그들간의 유대, 정을 알리없는 제도권 형사들은 현상만보고 이 공동체를 물질 공동체로 격하시킨다. 생물학적 가족, 사회복지제도, 고용제도의 한계. 어쩌면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추구하는 공리주의 한계랄까?

 

이 영화가 대단한 몇가지 이유.

먼저, 가족이 무엇일까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이 세상에 없는 따뜻한 가족을 가상으로 만들어냈음에도 차가운 현실 속에 살아가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가게가 망하지 않을 정도로만 훔치던’ 낭만적인 도둑질을 하며 서로 보듬는 따듯한 가족은 끝내 법이라는 사회제도를 통해 해체된다.

그리고 하나의 ‘가족’을 크게 조망하면서도 그 가족에 속해 살아가는 ‘구성원’의 입체적인 삶의 모습을 하나도 잃지 않았다. 자식하나 없이 연금과 위자료로 연명하는 할머니부터 부모가 되고 싶지만 되지 못하는 부부, 할머니만 의지하는 애정결핍 소녀, 아빠라고 절대 부르지 않지만 누구보다 아빠를 신뢰하는 소년, 친모에게 아동학대를 당하던 어린소녀까지.

마지막으로 관객은 영화 중간에나 돌아가는 길에서, 아니면 자기 전 양치질을 하면서 생각할 것이다.  주어졌든 선택했든 내가 속한 가족 공동체에 대해서. 무엇이 진정한 ‘가족’인가? 당신은 진정한 ‘가족’을 만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가? 삐뚤어진 생각과 행동으로 ‘가족 구성원’을 대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어느 가족>은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전작보다 각자 인생의 배경과 의도, 감정에 대해 굉장히 친철하게 설명해주는 영화이다. 그럼에도 과함이 없게 느껴지는 것은 앞서 말한대로 비현실적인 이 가족이 지독한 현실에 처해있기에 이런 부연들이 필요했던 것 아닐까 싶다.

 

나는 글을 쓰는 이 순간 아내, 아들들, 부모를 대하는 나를 다시 한 번 반성하게 된다. 그러는 한편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차기작이 무척이나 궁금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