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122, 비정규직

<초보팀장의 좌충우돌 시리즈 #1>

2007년 비정규직을 보호하기 위해 각종 법률이 개정됐다. 개정된 법에 따라 2년을 비정규직으로 근무를 했으면(사용한다는 표현을 쓰는데 여전히 어감이 어색하다), 그 이후에는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 좋은 취지로 도입되었지만, 역시나 꼼수라고 불러야 할지 말지… 헷갈리게 편법으로 변질됐다.

단순 사무직이나 비서를 파견업체를 통해 채용한다. 파견형태로 2년을 근무한다. 그리고 2년 뒤에 계약직으로 전환한다. 2년을 더 근무하게 한 뒤 보통은 퇴사를 해야한다. IT 업계에서는 파견업체의 정규직 소속으로 특정회사에 무기한 근무한다.

실제로 2008년에 있었던 일이 생각난다. 부서에 파견업체를 통해 1명, 공채로 1명의 후배(!)가 들어왔다. 그때는 나도 초년시절이라 정규직, 비정규직 개념이 머릿 속에 없었다. 꼭 나만 그랬던 것 같지는 않다. 외부 업체를 만나기 위해 명함이 필요했다. 파견업체에서 들어온 후배에게도 팀장의 허락을 받아 우리회사 명함을 만들어줬다. 같이 일하는게 어색하지 않았다.

그러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차이’를 느꼈다. 명절이 되면 명절비를 팀장이 자리에 앉아있는 팀원들에게 명절 잘 보내라고 한명 한명에게 찾아와 주곤 했다. 그런데 그 후배가 들어온 이후부터는 한명한명 조용히 불러서 따로 봉투를 나눠주었다. 그 친구에게는 명절비가 나오지 않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1명의 후배가 또 파견업체를 통해 들어왔다. 그리고 팀장에게 다시 찾아가 명함을 만들겠다고 했더니, 조심스레 회의실에서 보자고 했다. 이제 그러며 안된다는 것이었다. 소속이 다르기 때문에 노동법 상 문제가 있을 수 있으니, 소속된 파견업체 명함을 써야한다는 것이었다. 그 때부터 파견직(비정규직)과 정규직의 차이가 두드러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편법이 정상적인 것처럼 사람들의 인식 속에 물들어갔다. 그러다 채용한 계약직원을 직군을 분리하여 일괄 채용 했었다. 정부 시책에 보조를 맞추기 위해서였지만, 어쨌든 덕분에 정규직 신분으로 함께 일을 했다. – 그 와중에도 파견직은 그렇지 않았다 –

그 때는 나도 의사결정 권한이 없는 팀원에 불과했고, 인사 업무를 담당하지도 않아서 인지 불합리하다는 정도로만 생각을 했다. 이직을 하고 팀장이라는 어색한 직책을 받아 들고 여러 업무를 했다. 그 중에 ‘공교롭게도’ 인사 업무도 있었다.

비서를 파견업체를 통해 채용을 했다. 전문대학을 졸업한 이들이 대상이었다. 이력서를 살펴보니 대부분 한 직장에서 2년 또는 4년(근무지는 동일하고, 파견업체 소속으로 2년, 근무회사 소속으로 2년) 근무하고 다른 곳으로 이직을 하다 만 2년을 채우고 우리회사에 지원한 것이다.

이력서를 보는데 마음이 짠했다. 사회적 구조, 정책 때문에 떠돌이 생활을 하고 있는 것 아닌가? 물론, 고등학교 시절 공부를 남들보다 소홀히 했을 수 있다. 그래서 4년제가 아닌 2년제 대학을 택했을 수 있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졸업까지 12년의 축적된 시간이 대학을 고르게 하거나 취업을 하게 한다. 본인의 선택보다는 주어진 상황이 더 많은 것 같다. 좋다는 학교의 공급은 적고 수요는 많으니 당연한 이야기다.

아무튼 채용을 하고 일을 한다. 월급도 급여가 아닌 용역비로 업체에 나간다. 복리후생에도 차이가 있을 수 밖에 없다. 같이 식사를 하고 간식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한 공간에서 일을 하지만 ‘뭔가 다름’이 있다. 처음 채용한 이에게는 역량 개발이나 진로에 대해 이야길 나눴다. 해보고 싶은 업무를 듣고 무리가 안되는 선에서 업무를 확장해줬다. 그러다 혼자 파견직이다보니 다른 직원-비슷한 또래의 정규직도 많았다-과 어울리는게 힘들었는지 갑자기 그만뒀다. 다시 업체를 통해 다른 이를 같은 방식으로 채용했다.

더 경력이 적고, 나이가 상대적으로 어린 분을 채용했다. 적당하고 루틴한 업무가 배정 됐다. 차이가 있다면, 역량 개발이나 진로에 대해 묻지 않았고 묻지 않고 있고 묻지 않을 거다. 제도를 내 결정으로 바꾸는데 한계가 있고 내가 이 분의 인생을 책임져 줄 수 없기 때문이다.

일을 시켜보니 곧잘 한다. 새로운 일도 금방 꼼꼼하게 해낸다. 야간에는 학사 학위를 위해 공부를 하고 토익을 준비한다. 요즘에는 금융에 관한 인터넷 강의를 혼자 틈날 때 보고 있다. 일이 어렵거나 힘들지 않냐고 물으면 너무 한가해서 일이 많았으면 좋겠다고 한다. 처음 입사했을 때 임원이 일찍 퇴근하면, 이 분께도 일찍 퇴근하라고 했다. 처음에는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정말 그래도 되나요? 하면서 두 번 정도 퇴근을 했다. 또 그런 상황이 생겨 같은 말을 하니 난감한 표정을 다시 지었다. 순간 ‘아차’ 했다. 왜 그런 표정을 짓는지 알아챘다.

나의 말을 배려나 혜택이 아닌, 신분의 차이를 드러나게 하는 것으로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 이후로 같은 상황에서도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인사 담당하는 직원에게 소속감을 더 느낄 수 있게 대화를 더 걸어주라고 말을 하는 방법 밖에 없었다. 얼굴을 마주할 때마다 마음 한 곳이 시리고 아파온다. 탈없이 오래 다녀주기를 바라는 내가 비겁한 사람이 된 것 같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해결해 줄 수 있는게 없기도 하다. 내일도 얼굴을 마주하며 미소를 지어주겠지만 마음 한 켠의 짐은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유일한 배려라면 업무시간에 공부하는 걸 눈감아 주는 것 뿐이다. 다행이 하는 일을 소홀히 하지는 않으니까.

팀장의 팀원에 대한 책임 범위는 어디까지일까?

20220119, 실체

자주 보지 못해도 멘토처럼 느껴지는 분과 오랜만에 만났다. 근황 대화를 하다가 돈, 지위, 일 따위의 이야기를 하다 실체를 알 수 없는 세상에 살고 있는 것 같다는 것에 생각을 모았다.

누구 좋으라고 오르는지 알 수 없는 부동산 가치, 기업의 가치를 제대로 나타내는지 알 수 없는 시가총액, 거래소에서 거래만 되고 실생활에서 어떻게 쓰일지 모르는 암호화폐, NFT, 메타버스, …새로운 개념이든, 과거의 것이 재창조된 개념이든, 이런 개념들이 빠르게 순환한다.

실체는 없지만 새로운 가치, 돈이 될 만한 것들에 돈이 모인다. 실체를 모르면 모를수록 더 쉽게 돈이 물리는 것 같은 느낌. 다 아는건, 뻔하고 가치를 안다고 생각하니까.

쫓아가면 허망하고, 쫓지 않으려니 뒤쳐지고 (돈을 벌) 기회를 잃는 아이러니함. 실체를 점점 알 수 없는 세상에서 실존하려니 머리만 아파온다.

20210114, 호구

전에 사놓은 책이 많아 새로운 책을 살 때는 참 고민이 된다. 숙제만 느는 느낌이라고 해야할까. 어떤 책은 어렵고, 어떤 책은 시시하고, 어떤 책은 기대와 달라서 그냥 책장에서 먼지만 쌓이기도 한다.

최근에 서점을 지나가다 재밌는 제목의 책을 발견했다. 투자 관련 책이었는데 오랜만에 사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엊그제 책이 집에 도착했다. 목차와 서문을 읽고, 책을 펴서 촤라라라라락 넘기다가 소위 ‘뼈를 때리는’ 문구가 보였다.

“호구가 누군지 모르겠다면, 그건 바로 당신이다.”

<효율적으로 비효율적인 시장(Efficiently Inefficient)> Lasse Heje Pedersen

투자 수익 뒤에 숨어있는 경제학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을 빗대어 한 말이다. 실증적(?)으로는 투자이론을 열심히 공부하거나 어설픈 경제학/경영학을 전공한 이들은 투자를 주저하는 반면, 이것저것 재지 않고 과감하게 투자하는 경향이 있는 사람들이 소위 말하는 대박이 나는 것 같은데…

일단, ‘자본시장의 호구’에서 벗어나기 위해 일단 끝까지 읽어봐야겠다. 후기는 다음에…

20210110, 확증편향

사람이라면 기본적으로 확증편향을 가진 것 같다. 자신의 주장, 견해나 믿음에 대한 확신을 더하기 위해 자신의 뜻에 맞는 정보만 찾고 취하고 강화한다. 특히, 뭔가 선별해야 할 때 극에 달한다. 주식투자, 대통령 후보, 주변 인물들 같은 것들.

그 중 사람에 대한 확증편향을 가장 경계해야 하는데, 보통 긍정적인 면이 아니라 부정적인 면이 부각된다. 그 생각을 강화하기 위한 증거만을 수집하고 신뢰한다. – 사랑에 빠진 이는 반대의 측면이겠지만 –

만약 그 사람에 대한 정보(믿음)가 취사선택한 것이라고 잠시 잠깐 생각이 든다면, 그 자리에서 판단을 멈추고 ‘피그말리온 효과’를 생각해보는 건 어떨런지. 측면이 다를 수 있지만, 그 사람에 대한 부정적 생각을 회복하는데 도움이 되리라.

불완전한 인간이 생각의 균형을 잡기란 얼마나 어려운지, 그게 가능한 일인건지. 그러나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나는 어떤 확증편향을 가져야 한다. 기획, 계획을 세우기 위해 주장을 보완할만한 논거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 반대 논리도 있지만, 그걸 확증편향에 따른 증거로 눌러야 한다. 그래야 설득이 되니까. 그 다음 실행단계에서는 타인에겐 ‘피그말리온 효과’를, 본인에게는 ‘자기실현적 예언’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지속한다.

어느 새 이루어져 있으리라. (자기실현적 예언)

갑자기 왜 이런 심리학 용어들이 머릿속을 떠다니는지는 알 수가 없다.

20210109, 무엇을 바라는걸까?

오늘은 J군, O군의 외숙모 생일이 있어 아내의 어머니댁-우린 이걸 처가라고 부르기로 했다-에 갔다. 본가든 처가든 가면 뭔가 긴장이 풀리는지 잠이 쏟아진다. 점심을 맛있는데 기분나쁠정도로 거하게 먹고 오수에 빠졌다. 그러다 우리부부, 손윗처남부부, 어머니 이렇게 가족간의 대화가 시작됐다.

이야기 주제가 조금 헷갈리는데, – 사실 가족간의 대화라는게 주제가 왔다갔다 하지 않나? – ‘교육문제’가 테마였던 것 같다. 아이들의 기질, 각자 자기가 생각하는 옳은 교육/훈육법, 학원은 다녀야 하는지, 좋은대학을 보내려면 뭘 해야하는지 등등의 이야기를 주로 나눴다.

묻는 사람이나 답하는 사람이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쏟아냈다. 대화를 가만히 들어보니 마치 시각장애인의 코끼리만지기처럼, 다들 자기가 바라보는 ‘코끼리-교육-‘에 대해 말하고 있었던 것 같다. 주장을 하고 당위성을 설명한다. 그러나 결코 뜻이 하나로 모아질 수가 없었는데, 아이들의 기질과 성향이 다르고 부모도 마찬가지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내가 생각치 못한 이야기가 나왔다. (이 글을 쓰게된 이유이기도 하다. 나중에 더 생각해보고 이어서 글을 쓸 것 같긴 하다.) 아이들을 키우는 목표? Goal이라고 하는게 더 와닿는 표현인데, 교육을 할 때 무엇을 바라고 가르치냐는 것이었다.

무슨 말이냐면, 화자 중 한명은 아이가 ‘의사’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교육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엄격하게 트레이닝을 시키고 있다. 본인도 그런 엄마가 되는게 좋지는 않아서 아이들 없을 때 눈물을 흘린다는 이야기였다.

그럼 일종의 예시로써 왜, 당신의 아이가 의사가 되었으면 하는가? 그런 목표가 나오게 된 동기는 무엇인가? 화자는 본인이 자랄 때 어머니로부터 빡센(?) 교육을 받지 않아, 지금은 (대외적으로) 내세울 것 없는 생활을 하고 있는 것 같아서 아이는 그렇게 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동기라고 했다. 본인이 자란 환경을 투영하여 반면교사로 삼고 있는 것이다.

어떤 면에서 부러웠다고 해야할까? 대단하다고 생각했다고 해야할까? 나는, 또는 우리 부부는 O군과 J군이 어떤 사람이 되길 바라는 걸까? 여기서 ‘어떤 사람’은 직업을 말하는 걸까? 성품을 말하는 걸까? 살아가게 될 환경을 말하는 걸까?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다. 막연하게 그냥 바르고 행복하게 살기를 바란다. 정도? 나는 무엇을 바라고 희망하면서 아이들을 양육하고 있는 것일까? 꼭 바라야 하는 걸까, 교육의 목표는 알겠고, 교육의 목적은 뭘까? 비판하려는게 아니고 정말 모르겠다.

글 중간에 이어서 글을 쓸 것 같다고 한게 이런 이유다. 아무 생각없이 살다가 머리를 세게 때리는 생각을 만난 느낌이다. 좀 더 생각해봐야겠다.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침대로 들어가야겠다. 일단, 아무도 걷지 않은 눈 위에 발자국을 내듯이 글로 생각의 발자국을 남겨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