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쟁하는 삶

투쟁 (鬪爭)

어떤 대상을 이기거나 극복하기 위한 싸움.

직장생활을 한지 어느덧 14년차에 접어들었다. 그동안의 내 생활을 돌이켜보면 능력에 비해 늘 – 지금도 – 과한 평가를 받았다. 어느 존재가 날 어여삐 봐준 까닭이다.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아무리 잘하려고 해도 누군가 보아주지 않으면 인정받지 못한다. 나는 삶을 그리 투쟁적으로 살지 않았다. 오히려 순응적이었다. 내가 주체적으로 선택한 적은 그리 많지 않다. 주어졌고 그냥 그 자리에 있었고 거기에서 주어진 일들을 잘해보려고 했고 필요한 걸 채우려 무던히 노력했다. 내 잘못을 인정하려고 애썼고 내 공을 누군가 인정해주면 감사했지만 내 스스로 그걸 내 공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 지인들에겐 결과에 대해 자랑은 했다. –

나는 왜 이런 얘기를 주절주절 하는가. 내가 주변을 돌아보면 이렇게 순응적으로 살아서는 직장생활에서 인정받기가 힘들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투쟁하여 쟁취하는 사람들이 인정 받는다. 그게 보편적으로 인정받는 방식이다. 난 순진하게 살고 있지만 대부분은 쟁취해야 인정받더라는 것이다. 쟁취하는 사람들은 날 희한하게 바라본다. 쟤는 뭔가. 노력하지도 누군가에게 바라지도 않는데, 왜 좋게 봐주는가. 라는 의문을 품은 눈길로 날 바라본다.

30대 후반에 들어서부터 나에게도 그게 도전이었다. 투쟁해야 하는가. 그래서 쟁취하여야 하는가. 안하기로 했다. 누군가 나에게 늘 요구한다. 나도 뭔가 그렇게 드러내며 밟고 내가 더 뛰어남을 드러내야 한다고, 지금 이 순간만 생각하면 안되고 3년 뒤 날 생각하라고 말한다. 불안하지만 안하기로 했다. 그건 내가 아니다. 그 순간 난 괴물이 되어 사람들을 무참히 밟을 것이다. 그건 내가, 내 방식이 아니다. 유혹하지 말아라.

요즘 누군가 투쟁하려는 모습을 봤다.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는 것 같아 안쓰러워서 그렇게 안해도 된다고 말했지만, 이미 눈엔 욕망이 들어있었고 협력보단 투쟁을 통한 쟁취가 내 꿈이라고 눈빛으로 말하고 있었다. 난 그런 사람이 옆에 있으면 참 힘들다. 정말 힘들다.

그래도. 또 시간은 흘러가고 난 나이먹어가고 그래, 너는 그게 답이라고 생각하니 그렇게 살아라. 대신 조건이 있다. 너의 방식을 나에게 강요하지 말아라.

투쟁하여 쟁취하는 사람은 순응하는 사람을 미련하게 바라본다. 당신은 당신의 길을 가시오. 나는 나의 길을 가는데 까지 가보겠소.

때가 지나감.

어제 아침에 나가보니 주말새 찬바람에 아파트 앞 놀이터에는 낙엽이 운치있게 잔뜩 쌓였다.폰카메라로 찍기 아까워 ‘오후에 카메라를 들고 와서 찍어야지’ 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오후에 까마득하게 잊고 오늘이 됐다. 정신없이 출근을 하고 퇴근하는 길에 놀이터를 봤다. 말끔히 청소가 되어 있었다. 아 이런, 때가 왔을 때 잡았어야 했는데… 이번 주말을 다시 기다려보기로…

코 아래 인상.

코로나로 마스크를 쓰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마스크 세상’에서 전에 알지 못하던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놀랄 때가 있다. 마스크 쓸 때와 벗을 때의 인상 차이가 얼마나 큰지 모른다. 코 절반 아래 입, 턱 모양이 인상에 엄청 큰 영향을 끼치는지 이번에야 알게 됐다.

상대방을 코 윗부분 절반과 눈, 눈썹, 이마까지의 얼굴과 머리 형태/모양으로 눈으로 인지하고 나면, 뇌가 코 아래 인상을 알아서 프로세싱 하는가 보다.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은 마스크를 벗어도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코로나 때문에 쓸데없이 알아가는 것들이 생긴다. 코 아래 인상 따위 신경쓰고 싶지 않은데.

[M] 결백 (★☆)

장례식장부터 시작되는 첫 장면. 롱테이크가 인물들을 다이나믹하게 훑으면서 기대감을 고조시킵니다. 그러다 농약이 든 막걸리를 마신 몇몇이 구토를 하기 시작합니다. 그 이후 숨겨진 가족사+ 추잡한 동네사(?)를 바탕으로 엄마의 결백을 주장하는 변호사 딸의 고군분투기가 펼쳐집니다.

영화는 마치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모두 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 같습니다. 대사 한마디 한마디가 너무너무 정말정말 친절하고 의미심장합니다. 그래서인지 매력이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그 대사 한마디 한마디가 너무 뻔해서 앞의 이야기가 단편적으로 예상이 되어버립니다. 첫 장면에서 심어준 기대감은 온데간데 없고 치달아야 할 긴장감도 힘을 잃은 채 이야기는 신파로 흘러갑니다.

[M] 사라진 시간 (★★)

사실과 기억. 자기자신의 기억, 타인의 기억 속에서 알수 없는 사실에 관한 이야기.

영화 초반은 장진 감독의 초기작 같은 부조리극이 지배하다가 후반은 홍상수 내지는 장률 감독 작품에서 느끼는 모호함이 지배합니다. 극 중 내내 긴장감이 고조되다가 크레딧이 올라가는 순간, 명확하게 해소된 것 하나없이 모두 내팽개쳐집니다.

박형국 형사(조진웅)가 사건을 맡으면서 알게된 타인의 기억과 자신의 기억이 꿈에서 조합되어 조작된 사실 같은 꿈을 꾼 것에 불과할까요? 그리고 정신과 의사의 말처럼 꿈에서 깨어남으로써 무의식속 찌꺼기 같은 기억이 정리된 것일까요?
( “참 좋다~”로 시작해서 “참 좋다~”로 끝나는 꿈. 관객의 기분은 참 좋지 않습니다.)

감독이자 작가는 자기 스스로 인식하는 자신과 타인(사회)이 인식하는 자신, 즉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합니다. 결론을 내지않고 열어둠으로써 관객에게 ‘알아서’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거라고 생각하나 봅니다.

평론가는 호평을, 관객은 혹평을 날린다고 하는데 저는 후자에 가깝습니다. 관객 입장에서는 결론을 내지 ‘못한’ 작가의 무책임함으로 느껴지기 때문이죠. 평론가의 호평도 수긍이 되질 않습니다. 감독 정진영이 추구하는 연출이나 이야기 포트폴리오가 쌓여있지도 않은데 포스트모더니즘식 처녀작에 호평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