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베트남

여기는 호치민. 지난 달에 이어 올들어 베트남은 두 번째, 국외 출장은 세번째다.

그 사이 잊고 살던 영어공부(?)도 다시 시작했다. 확실히 와보고 직접 부딪혀보니 절실함도 생기고 어떤 부분을 보완해야하는지도 몸소 느끼게 된다.

글이 없던 동안 일 스트레스가 많았는지 이명과 눈마름증도 겪었다. 요즘은 갈헐적으로 줄긴 했지만 가끔씩 다시 찾아온다.

 

그간 믿음에 대한 의심은 없었지만 믿는다는 사람으로서 마음이나 태도, 행동은 형편없었다. 주일 예배는 자리에 앉아 시간을 때웠고, 의지하거나 바라지도 않고 혼자 아둥바둥거렸다. 혼자 해결할수 없는 것들로 고민하니 해결이 될 턱이 있나.

최근에서야 다시 붙잡고 의지하고 그 와중에 아 이런게 시험인가 하는것도 경험했다.

다시 새 마음으로 마음을 다진다. 기초를 일으켜 세워야 한다. 몇 주간 분명했던 메시지를 따라..

걱정하지 말아라, 의지 해라, 그리고 경외해라.

 

살기 위해, 글을.

살기 위해 앞으로 이곳에 글을 쓰지 않으면 안된단 생각이 덜컥 들었다.

사실이다. 글을 써야 한다.

보고서가 아닌 글을.

여기에.

자주.

 

길을 걷다가. 

아이를 재우러 아기띠를 매고 골목길을 어기적어기적 배회했다. 기분과 눈을 환기하기 위해 가능한한 몰랐던 길, 새로운 길을 찾아 이 골목 저 골목을 뒤뚱거리며 쏘다녔다.

갤러리가 딸린 커피가게, 아니 커피숍이 딸린 갤러리, 요란한 음악을 막 틀어놓은 펍, 자전거 병원, 아기용품과 애견용품을 같이 파는 가게, 어김없이 모퉁이를 차지하고 있는 편의점, 타투가게, 또 커피가게, 막 생긴듯한 우동집.

그러다 코를 찌르는 본드냄새가 진동하는 곳을 지나쳤다. 본능적으로 미간을 지푸리고는 발걸음 속도를 늦추고, 냄새나는 곳으로 스윽 쳐다봤다. 분재집인지, 커피가게인지, 빵집인지 알수 없지만 개점을 준비하고 있는 듯 한 풍경이 펼쳐졌다.

그 조그마한 가게 안 한 가운데 어둑한 조명 속에 주인인 듯한 부부가 앉아서 유리에 붙일 인테리어 장식에 접착제를 바르고 있었다. 길다란 검은색 업소용 선풍기가 부부 옆에서 달그닥 돌아가며 땀을 식혀 줬다.

아내로 보이는 여성은 희미하게 웃으며 장식재를 붙잡고 있었고, 남편일 남성은 송글송글 맺힌 땀을 개의치 않고 열심히 쓱쓱 접착제를 발랐다.

순간 남성분이 고개를 들었고 어느새 발걸음을 멈추고 있던 나와 눈이 마주쳤다. 서로 민망함을 감추고 남성은 땀을 닦고 나는 눈을 길로 향하고 발걸음을 다시 옮기기 시작했다.

뭘까. 그 광경을 보는 순간 나를 스쳐간 생각과 감정들은. 나도 나의 일을 하고 싶다. 잘할 수 있을까. 부럽다. 자금은 어떻게 마련했을까. 근데 뭐하는 가게일까. 원래 어떤일을 하다가 하시게 됐을까. 나도 내일을 하면 참 잘할텐데. 근데 실패하면 어쩌지.

 

그리곤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하고 스마트폰 메모를 열어 미친듯이 글을 쓴다. 그러고 나서 지금에서야 생각한다.

 

아 이렇게 생각이 너무 많아서, 시작조차 하지 못하는구나. 에이그.

아이가 마침내 잠들었다.

오롯이 지금을 즐기는 법.

최근 며칠, 아니 몇 주 동안 이 생각이 머릿속에 박혀서 떠날 생각을 하질 않는다.

“왜 나는 오롯이 즐기지 못하는가?”

 

발단은 몇 주 전 캠핑장이었다. 지인의 초대를 받아서 갔는데, 천진난만한 지인 부부의  모습이 이 생각의 시발점이었다. 나름 살아가는 걱정이야 없겠나 싶기도 하지만 눈에 비친 모습으로는 그런 어떤 삶의 무게감을 느낄 수 없었다. 그냥 지금 고기 굽는 행동, 캠핑장에 나와서 시간을 보내는 것, 그 자체를 만끽하고 즐기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러고나서 별 생각이 없었다가 요즘 몇 주간  부는 바람이 아무생각없이 내몸을 지나치듯 옛 나의 모습들이 스쳐갔다. 놀고 있을 때는 해야할 일을 생각한다. 해야할 일을 할 때는 무료함이나 노는 것을 그리워한다. A를 만날 때는 못 만난 B를 생각한다. 책을 읽을 때는  영화를 보고싶다. 꼭 청개구리 마냥 오롯이 현재를 즐기지 못하고, 지금 없는 것을 아쉬워하고 이리 오라고 손짓한다.

 

그나마 집중하는 순간은 지금처럼 글쓰는 시간이다. 세상에 없는 듯한 – 그러나 다 어디선가 본 듯한- 문장을 창조하기 위해 신경을 집중한다. 문맥이 매끄럽게 이어지는지, 참신한지 미간을 찌푸리며 모니터에 적힌 글자들을 바라본다. 그리고 잘못 쓴 글자가 없는지 보고서를 쓰듯 검토한다. 다시 말하면 최근엔 글쓰는 시간이 없었기에 오롯이 지금에 집중하거나 즐길 시간도 없었다. – 물론 보고서는 참 많이 썼는데, 보고서 쓰는 일과 글쓰는 일은 많이 다르다 –

어쨌든 그 바람이 나를 스치던 순간부터, 나름 매 순간에 집중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일부러 다른 생각을 차단하고 집중하려고 애쓴다. 그런데 참 쉽지 않다. 살아온 나날들이 쌓여갈 수록 몸에 밴 나도 모르는 습관들은 어찌나 더 떨쳐버리기 어려운지. 앞으로 얼마나 더 어려워 질런지. 더 어려워지기 전에 오롯이 즐기는 법칙이 있다면 배우고 익히고 싶다. 그래서 지금이라도 삶에 주어진 그 시간에 충실하고 감사해보고 싶다. 가족 수가 늘어가고 신경쓸 일들은 더 많아지고 생계와 가장이라는 부담과 책임감이 어깨를 짓누르기 시작하면서, 오롯이 즐기는 일이 더욱 어려워졌지만 내가 믿는 분께 짐을 내려놓고 내게 주어진 순간들을 만끽해보고 싶다. 다음에는 이 생각들을 어떻게 실천 했는지 쓸 기회가 생겼으면 참 좋겠다.

 

  • 사실 집중하고 즐기는 이 감각을 익히고 싶어서 기승전결도 없는 누가 읽는다면 미안할법한 이런 글을 쓰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근황, 신경치료. 

부서를 옮기고 정신이 없었다. 뚜렷하게 이게 ‘나의 일’이다라는게 없는 업무다 보니 맘이 공허하기도 하고 뭔가 싶기도 하다가 이제서야 조금씩 역할을 찾아가는 중이다. 그래도 이직 막연하고 모호하다.

신앙생활의 지리함은 여전하다. 신앙이 뭔지 믿음이 뭔지 묻지도 않다가 이건 아니지, 이러면 안되지 하면서 기도를, 가끔씩 하는 둥 마는 둥 시작했다.

아랫쪽 왼쪽 첫번째 어금니 치아 끝 일부가 떨어져 나갔나 싶어 치과에 갔다. 역시나.  난생 처음 말로만 듣던 신경치료를 받았다. 마취 때문에 입안 한쪽과 입술이 얼얼하다. “물로 헹구세요.” 종이컵에 든 물을 입에 머금고 오물오물하다 입을 오므리고 뱉었다. 마취된 입술 때문에 물이 막 튀었다. 웃기면서도 왠지 내 맘대로 움직이지 않는 내 몸이 서글펐다.

집에 오는 길에 예상되는 치료비를 아내에게 알려주었다. 내 몸부터 걱정해주는 아내가 고마웠다. “인제 하나씩 망가지나봐 ㅋㅋ”라고 문자를 보내고 나니 괜히 더 늙어진 느낌이 들더니 늙는게 두렵단 생각이 스쳐간다.

내 몸은 내 말을 더 안들을테고, 몸보다 생각과 마음은 더 좁아지고 작아질테고, 고집만 세져서 잔소리만 지금보다 늘어날테고, 겁도 더 많아져서 두려운게 많아질테고…

제대로 기도라도 해야지. 그래도 제대로 늙을까 말까 일텐데. 어쨌든 다시 제대로 살려고 발버둥쳐봐야겠다. 고 마무리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 둘러대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