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연습장과 비빔면

작년부터 ‘일’로 골프를 치고 있습니다. 그 때문인지 흥미를 아직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실력은 길러야 하기에 라운딩이나 일정이 없는 주말에는 골프연습장에 갑니다.

제가 가는 실외 골프연습장은 60분 또는 90분 중에 선택을 할수 있습니다. 그리고 매주 고민합니다.

60분으로 하면, 뭔가 시간이 모자란 느낌이고 마음이 급해져서 연습이 잘 안됩니다. 그렇다고 90분으로 하면 마음은 편하지만 시간을 맞춰 연습을 하고 나면 온몸이 뻐근합니다. 연습시간이 한 주에 한번에 불과하고 라운딩보다 더 많은 공을 치니 몸이 적응을 못하는 것 같습니다.

결국 오늘도 90분을 택해서 연습했습니다. 등엔 영락없이 파스가 붙어 있습니다.

꼭 팔* 비빔면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1개만 먹자니 모자라고 2개를 먹으면 한계효용에 금세 도달해 밀가루 냄새가 어느순간 심해집니다. 그래서 한 때 팔*는 곱배기 비빔면을 팔기도 했습니다.

골프 연습시간도 75분 정도 있으면 좋을텐데.

뭐 사실 비빔면도 2개 끓여서 1.5개 정도만 먹고, 연습장도 90분 끊어서 쉬엄쉬엄 하거나 75분 정도 됐을 때 멈추면 되겠지요.

투철한 절약정신(!) 때문에 이렇게 미련하게 삽니다. 허허.

경유지

경유지에선 불안하다. 목적지까지 가야한다는 강박이 있는건지, 결국 거쳐갈 곳이라면 빨리, 잠깐 거쳐가 목적지에서 여유를 즐기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나보다.

다른 사람처럼 목적지야 가든말든 잠시 멈춘 경유지에서 주변도 둘러보고 순간을 누리면 좋으련만. 경유지에서 멈춰 ‘목적지야 뭐 어쩌다 보면 안갈 수도 있지,’ 라고 하면서 그 곳을 즐기면 좋으련만. “난 불안하다!”

꼭 경유지를 입력했는데도 “목적지를 벗어났습니다”라는 말을 반복해서 내뱉는 네이비게이션 같다.

왕산해수욕장에 가는 도중에 마시안해변, 갯벌에 멈춰섰다. 아이들은 진흙 속 게를 찾고 있고 아내도 그런 아이들을 도우며 지금을 즐기고 있지만, 나는 짐이 있는 돗자리에 앉아 글을 쓰고 있다. “이 곳을 즐길 수가 없다!”

목적지에 빨리 가거나, 아니면 이 곳이 목적지로 변경되었다고 내 머릿속에 입력해주길 기다리며.

20200708

정신 바짝 차리고 게으름 피우지 말자.

여유가 있긴 있었음 좋겠다.

20200705

매년 7월 4일이 되면, 1년치 홈페이지 비용을 새로 낸다.

7월 4일. 7월 4일은 군제대한 날짜다. 제대하자마자 홈페이지 도메인, 호스팅비를 갱신한 탓이다. 나이가 먹어가면서 글의 흔적, 나의 흔적이 남는 것에 대한 부담으로 자주 써야겠다는 다짐은 없던 것이 되고만다.

오랜만에 이렇게 날짜로 된 제목을 정하고 글을 쓰게 되었다. 어제 첫째와 갔던 교보문고에서 봤던 문구가 하루 넘게 내 머릿 속에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글쓰기는 치유를 동반한다”

그럼 나에게 치유할 문제가 있다는 건가? 음, 문제라기보단 생각할 거리는 늘어나는데 머릿속에서 정리가 되질 않는 것들이 많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생기는 책임감과 삶의 무게, 그리고 40이 되면서 생긴 조바심이 한데 뭉쳐있다. 아이들을 남부럽지 않게 키우고 싶은 마음, 회사가 커가면서 늘어가는 신경써야할 것들, 가족-친구간의 관계에서 마냥 평온하고 편안하고 싶지만 그렇지 않은 것들. 무엇하나 만만한 것이 없다고 생각이 든다.

어느 것 하나 정리가 안되다보니, 의욕적으로 계획했던 일도 ‘되는대로’ 하게 된다. 하루에 최소한의 시간을 내서 아이들과 놀아주기, 피아노 연습하기, 같이 말씀보기, 간단한 근력운동하기. 이런 계획을 세웠다가 신경쓸 거리가 조금이라고 생기면 그냥 ‘순간을 잊기 모드’로 전환한다. 가끔, 아니 자주 ‘그냥 생각하지말고 잠이나 자자’ 하면서. 그러다보니 정리하지 못한 스트레스는 쌓여가는데, 어떻게 정리해야할지 무엇부터 다시 돌아봐야할지 잘 모르겠다. 그나마 오늘은 뭔가 나아질까? 하는 심정으로 나 스스로에게 이렇게 글을 써본다.

도대체 이 두려움의 실체는, 본질은 무엇인걸까? 감당하지 못할 무게를 지고 사는걸까? 단순한 문제를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는 걸까? 해결해야할 문제가 아니라 상황일 뿐인데 해결해보려 의미없이 아둥바둥하는 걸까? 모르겠다.

모르겠다고 하면서도 최근에-아니면 글쓰는 지금 이 순간일수도 있다- 내린 결론이 있다. 앞으로 살아갈 집과 쓸 돈의 (상대적? 절대적?) 결핍 때문인가? 참 이상한 시대에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상하다기 보단 불안을 부추기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 같다. 모두가 집이든 주식이든 로또든 한방을 노리고, 유희적인 일에 많은 재능들과 돈이 모인다. 하는 일만 열심히 하는건 순진한, 현상유지에 불과한 몸부림일 뿐이다. 노동의 가치가 이렇게 의미없던 시대가 있었던가? 이런 생각들이 날 불안 속으로 이끌고 있는 것일지 모르겠다.

그래서 요즘 지루한 책들을 읽고 있다. 그나마도 집중이 잘 안되어서 꾸역꾸역 읽고 있다. 물리적 결핍은 해소가 안될테니 조바심을 줄여가고, 마음의 결핍이라도 해소하겠다는 나름의 의지다. 사실 의지일 뿐이지 해결책을 찾은 건 아니다. 그럼에도 이렇게 뭔가 해결책을 스스로 찾고 있는 중이라고 위안에 가까운 말을 글 말미에 쓰는 것은 강박이다. – 이게 다 회사 보고서 때문이다- 글의 결론을 써야한다는 강박.


(이어지거나 또는 전혀 다른 이야기)

며칠 전 내 나이 대의 현재를 보여줄만한 소설 소재를 생각해냈다. 그런데 첫 문장도 쓰지 못하고 있다. 누군가에겐 결핍과 절박함이 글을 쓰는데 동력을 제공하겠지만, 마음과 시간의 (엄청난) 여유가 없으면 글이 써지질 않는다.

교보문고에서 본 어느 작가의 글귀 때문에 이렇게 주절주절 내 상태를 정리해보게 됐다. 아이들과 놀아주기로 했는데, 아이들이 집 앞 놀이터에서 알아서 놀면서 밖에 앉아서 글을 쓸 시간을 줬다. 이렇게 두서없는 독백은 오랜만이다.

돌아온 일상, 사라진 일상

1년만에 다시 이사를 하고 한 달 새 많은 변화가 있었다.

다시 짧아진 출퇴근 시간은 저녁에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하지만 반성할 것도 있다. 지난 일년 간의 관성으로 시간은 늘어났지만 질적으로 좋은 시간을 함께 보내지는 못한 것 같다.

퇴근 후 활용 할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났다. 간단한 운동, 책읽기, 큐티를 꼬박하는 연습을 하고 있다. 이 것들의 적? Smart phone + TV.

평수를 좁혀 이사 오면서 지난번 집보다 가족끼리 조밀하게 모여있게 되었다. 한달 간 지내보니 오히려 심리적인 안정감이 더 커진 것 같다. 아직 아이들이 크지 않아서 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공교롭게 이사 전후로 코로나19가 우리나라에 본격적으로 확산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개학은 늦춰졌고, 교회 예배는 온라인으로 바뀌었으며, 퇴근 후 회식, 지인 만남과 같은 네트워킹이 모두 멈췄다.

아내는 아이들과 24시간 시간을 보내느라 고군분투 중이고, 나는 나대로 코로나19가 일으킨 경제 위기로 인해 회사 일로 마음 고생을 많이 하고 있다.

예상하지 못한 이런 재난에 속수무책일 수 밖에 없는 인간의 한계와 약함을 다시한번 절감하면서, 사라진 일상이 돌아오길 기도하는 수 밖에 없다.

결국, 인간의 지성이 모여 해결 하겠지만, 후유증이 어떠할지는 알수가 없다.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차치하고 이런 일이 벌어지고 나면 인간의 삶의 패턴에도 미묘한 변화가 생긴다고 하니까, 행동양식이 어떻게 변할지는 알수가 없다.

일상이 완전하게 돌아오면, 언제라도 이렇게 일상이 사라질 수 있다는 생각으로 일상을 소중히 여겨야겠다고 상투적으로 생각하게 된다. 물론, 이미 알고 있다. 정상적인 삶을 일주일만 보내도 다시 일상을 가볍게 여기고 살아갈 내 모습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