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 킬링디어; The Killing of a Sacred Deer

복수의 복수를 낳는 신화. 

우리의 지성도 결국 생존본능 앞에서 얼마나 무기력한가. 

권력자도 절대적 선택의 순간에 얼마나 우매한가. 

그 우매함에 굴복해야 하는 현대인의 숙명. 

기계화되는 인간.  우리의 구원은 어디에 있는가. 

인간으로는 해결되지 않을 답이 정해진 영원한 숙제. 

이성을 무시하니 논리적일수 없는 영화. 평가절하. ★★

[M] 어느 가족; Shoplifters; 万引き家族 감상기

! 스포일러 주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작품. 2018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영어제목도 그렇고 원제는 <좀도둑 가족(万引き家族)> 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 개봉하면서 <어느 가족> 개명을 했다. 좀도둑 가족이라고 명명하는 순간 왠지 모르게 코미디영화처럼 비춰질 수 있어서 바꾼게 아닐까 싶다.

이해는 되지만 아쉽다. 영화는  ‘가족의 본질’에 대해 묻고 대답하는 <어느 가족>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도둑질’이 이야기의 중심을 관통하기 때문이다. ‘도둑질’로 가족 공동체가 형성되었고, ‘도둑질’로 가족 공동체가 연명한다. 그러다 ‘ 도둑질’이 발각되자 가족 공동체의 붕괴가 일어난다.

이 영화를 보는 중간중간 방치된 아이들이 가족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그린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아무도 모른다(2004)>가 생각났다. 꼭 아이들이 할머니, 성인, 청소년, 어린이로 확장된 가족으로 재탄생한 느낌을 받았다.

영화는 혈육이 아니지만 이렇게 따뜻한 가족 공동체가 있다면 어떨까? 라는 질문을 던지는 동시에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들에 대한 한계를 지적한다. 각자의 속사정과 그들간의 유대, 정을 알리없는 제도권 형사들은 현상만보고 이 공동체를 물질 공동체로 격하시킨다. 생물학적 가족, 사회복지제도, 고용제도의 한계. 어쩌면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추구하는 공리주의 한계랄까?

 

이 영화가 대단한 몇가지 이유.

먼저, 가족이 무엇일까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이 세상에 없는 따뜻한 가족을 가상으로 만들어냈음에도 차가운 현실 속에 살아가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가게가 망하지 않을 정도로만 훔치던’ 낭만적인 도둑질을 하며 서로 보듬는 따듯한 가족은 끝내 법이라는 사회제도를 통해 해체된다.

그리고 하나의 ‘가족’을 크게 조망하면서도 그 가족에 속해 살아가는 ‘구성원’의 입체적인 삶의 모습을 하나도 잃지 않았다. 자식하나 없이 연금과 위자료로 연명하는 할머니부터 부모가 되고 싶지만 되지 못하는 부부, 할머니만 의지하는 애정결핍 소녀, 아빠라고 절대 부르지 않지만 누구보다 아빠를 신뢰하는 소년, 친모에게 아동학대를 당하던 어린소녀까지.

마지막으로 관객은 영화 중간에나 돌아가는 길에서, 아니면 자기 전 양치질을 하면서 생각할 것이다.  주어졌든 선택했든 내가 속한 가족 공동체에 대해서. 무엇이 진정한 ‘가족’인가? 당신은 진정한 ‘가족’을 만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가? 삐뚤어진 생각과 행동으로 ‘가족 구성원’을 대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어느 가족>은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전작보다 각자 인생의 배경과 의도, 감정에 대해 굉장히 친철하게 설명해주는 영화이다. 그럼에도 과함이 없게 느껴지는 것은 앞서 말한대로 비현실적인 이 가족이 지독한 현실에 처해있기에 이런 부연들이 필요했던 것 아닐까 싶다.

 

나는 글을 쓰는 이 순간 아내, 아들들, 부모를 대하는 나를 다시 한 번 반성하게 된다. 그러는 한편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차기작이 무척이나 궁금하다.

 

★★★★☆

심야상영의 추억.

2000년대 초반, 스무 살 초반 무렵에 심야상영이 유행했다.

지금은 폐관한 정동 스타식스에서 단 돈 만 원이면 밤부터 이튿날 새벽까지 최근 개봉한 세 편의 영화를 연달아  볼 수 있었다. – 심지어 동시상영관이었던 대흥극장에서도 잠시 심야상영을 했었다 –

가장 기억에 남는 영화는 <엑소시스터 무삭제판>, 그리고  <나인야드>, <감각의 제국>. <엑소시스트> 외 2편은 내용이 기억에 남는다기 보단 에피소드 같은 것들 때문이다.

<엑소시스터 무삭제판>은 원래 공포영화 자체를 좋아하지 않았는데, 단순 호기심과 친구들에게 이끌려 보게 됐다. 거미처럼 계단 내려오는 장면, 종교적 저주 장면들이 머릿속에 각인되어서인지 아직도 생각이 난다.

<나인야드>는 조금 기억이라고 하기에 모호하긴 하다. 보통 세 편의 영화를 상영하면 한 편 정도는 보다가 스르륵 잘만한 영화가 껴 있곤 했다. 이 영화가 내겐 그런 부류였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프렌즈>의 챈들러도 나오고, 초반에 왠지 재밌어서 킥킥 거리다 잠이 들었다. 그리고 나중에 대여점에서 빌려서도 보고 – TV에서 했었나?- 세네 번을 보겠다고 시도했는데 이상하게 계속 잠이 들었다. 하루는 작정하고 졸리지 않은 오후에 보겠다고 틀었는데도 잠이 들었다. 나한테는 참 이상한 영화다.

<감각의 제국>은 사실 볼 생각이 없었다. 화제가 되긴 했지만, 오래된 일본영화가 별거 있겠냐 싶었다. 어느 날 대학교 OT 에서 친해진 무리와 심야영화를 보기로 했다. 그런데 여학우 2명이 이 영화에 대한 호기심과 보겠다는 의지가 너무 심해 보게 되었다. 당시 뉴스로 여성들이 관람 중에 뛰쳐나갔다는 기사도 있었고 했다. 그래서 인지 영화보단 옆에 앉았던 여학우들 반응을 더 살폈던 것 같다. (아무도 뛰쳐나가지 않았다!)  그래서 일까? 지금 생각해보니 내용이 딱히 생각이 안난다.

 

그렇게 세 편을 보고나면 같이간 친구들과 부시시한 얼굴로 아침을 맞이한다. 화장실에 가서 대충 얼굴-에 가득한 기름기-을 씻고 극장 앞에서 손을 흔들고 헤어진다.  오후에 다시 일어나면 봤던 영화가 꿈인지 실화인지, 내용이 어땠는지 아득하다. 그래서인지 정작 어떤 영화를 누구와 무엇을 봤는지 가물가물하다. 오래된 탓도 있겠지만, 함께 밤새 무언가 같이 집중해서 시간을 보내는 것 자체가 즐거웠던 시절인 것 같다.

시간 여유가 넘쳤던 시절의 이야기다.

니모, 알로.

설 연휴 때 애니메이션 두 편을 시청했다.

하나는 지난 주말에 온 손님들과 함께 본 ‘굿 다이노’. 사실 스토리보다는 실사라고 해도 믿길만큼 사실적인 작화가 기억에 더 남지만 주제는 참 맘에 들었다.
그리고 EBS에서 ‘니모를 찾아서’를 방영하길래 이미 아이도 보고 나도 보았지만 다시 한 번 시청했다.

약간 초점은 다르지만 두 작품 모두 주인공들이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고 성장하는 것과 결국 그 모든 것이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이 굉장히 유사했다. 그리고  주인공(‘니모를 찾아서’의 니모와 ‘굿 다이노’의 알로)들이 신체적인 문제가  있다는 것비슷하다.

니모는 어릴 때 사고로 한쪽 지느러미가 다쳐 헤엄도 빨리 못친다.
알로는 가장 큰 알에서 태어났지만 몸집이 작고 머리가 커서 균형도 잘 못잡고 힘도 못쓴다.

이런 주인공들이 어쩔수 없이 겪게되는 환경과 주변의 도움(물론 괴롭히는 장애물도 참 많다!)을 통해 성장한다. 그리고 가족이라는 울타리로 돌아간다.

이런 작품을 통해 모자란 부분이나 장애를 극복하는 힘과 또 자신보다 무언가 모자란  사람들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고 도와줄 수 있는 마음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가족이라는 공동체를 통해 더욱 성장하고 보살핌 받을거라는 것도 알게 될 것이다.

부모가 되고 나니 이런 관점으로 영화를 보게 된다. 특히 장애에 대한 부분을 눈여겨 보게되는 것은 사회복지를 하고 있는 누이에게 세뇌된 측면이 있다.

이것도 저것도 어쩔수 없다.

끌리는 건조함. 김예림.

 
 
코안이 뻑뻑하다. 코를 풀면 가끔 코피가 난다.
건조한 겨울을 나고 있다는 대표적인 내 몸의 증거들이다.
그런데, 요즘은 음악을 찾아 듣기도 귀찮을 정도로 마음도 건조해졌다.
 
무료한 퇴근길에 손가락을 스마트폰 액정에 대고 휘릭 휘릭 위아래로 휘저으며, 아무 생각없이 음악을 찾아본다.
그러다 건조한, 선율이 없으면 코딱지가 마구 쌓이고, 코피가 날 것만 같은 그 목소리가 그리워진다. (평소 목소리가 그렇다는 건 아니다. 평소 목소리는 못 들어봤다.)
 
건조한 공기 속에 서 있는 건조한 마음의 사람도, 선율이 더해진 그녀의 건조한 목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지면, 마음이 이내 촉촉하게 변할지 모른다.
 
개인적으로는 김예림의 목소리는 발랄함이 넘치는 노래보다는 이렇게 뭔가 적적한, 절제된 노래들이 더 잘 어울리는 것 같다.
 
 
그래서 어거지로 수식어를 만들어봤다. 끌리는 건조함. 김예림.
 
 

이승환, 김예림 – 비누

토이(with 김예림) – 피아니시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