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선화에게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_ 정호승

그대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 견디는 일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내리면 눈길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속을 걸어라
갈대 숲 속에 가슴 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그대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가끔씩 하느님도 눈물을 흘리신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산그림자도 외로움에 겨워
한번씩은 마을로 향하며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서 우는 것도
그대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그대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 견디는 일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그대 울지 마라.

그대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 견디는 일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이 순간 _ 피천득

이 순간 내가
별들을 쳐다본다는 것은
그 얼마나 화려한 사실인가



오래지 않아
내 귀가 흙이 된다 하더라도
이 순간 내가
제 9교향곡을 듣는다는 것은
그 얼마나 찬란한 사실인가



그들이 나를 잊고
내 기억 속에서 그들이 없어진다 하더라도
이 순간 내가
친구들과 웃고 이야기한다는 것은
그 얼마나 즐거운 사실인가



두뇌가 기능을 멈추고
내 손이 썩어가는 때가 오더라도
이 순간 내가
마음 내키는 대로 글을 쓰고 있다는 것은
허무도 어찌하지 못한 사실이다

삶 _ 푸쉬킨

삶 _ 푸쉬킨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슬픈 날엔 참고 견디라
즐거운 날이 오고야 말리니

마음은 미래를 바라느니
현재는 한없이 우울한 것
모든 것 하염없이 사라지나
지나가 버린 것 그리움이 되리니
 

비와 ‘누군가’의 이야기.

내 방의 커다란 창문으로 내다본 하늘은
그닥 흐리지 않았지만
기상청 홈페이지를 맹신하는 나는
우산을 챙겨 넣었다.
‘오늘은 비가 올거야’ 라고 작게 속삭이면서.

언제나 그렇듯
입구의 세콤 아저씨들이 인사를 건넨다.
” 좋은 아침입니다. “

너무나 사무적인 그들의 말투에
대꾸하지 않은 채 편의점으로 들어선다.

” 333은 없나요? “
사흘에 한번꼴로 구입하는 자일리톨이 없다는 것에 대해
기어코 속상함을 표현하고 만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떠오르는 카페를 지나,
과한 친절함으로 날 부담스럽게 하는 샌드위치 가게를 지나,
어느새 버스정류장이다.

긴 의자의 정 가운데에 [어쩌면 살짝 왼쪽으로 치우쳐]
누군가 앉아 있지만
개의치 않고 털썩. 주저앉았다.

‘누군가’는 나를 힐끗 보더니 오른쪽으로 저만큼 물러난다.

의자에 앉은지 1분이 채 안되어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24인치 캐리어를 앞에 세워두고 있던 여자도,
한손에는 담배를 다른 한손에는 아이팟을 들고 있던 훤칠한 청년도
모두 정류장 안으로 비를 피한다.

나와 ‘누군가’가 앉아 있는 의자의 빈 공간과
자신들의 엉덩이 크기를 비교하고자 하는 눈빛을 읽었지만,
나와 ‘누군가’는 움직일 생각을 않는다.

‘저 훤칠한 청년이 조금만 더 잘생겼더라면 살짝 옆으로 움직일 용의는 있는데 말야’
라고 잠시 생각하는 동안 버스가 청년을 데려간다.

다시 ‘누군가’와 단둘이다.

어제 본 ‘섹스 앤 더 시티’에서 캐리는
같이 비를 피하던 남자에게 말을 걸었다.
물론 결과는 참담했지만.

이곳이 뉴욕이 아니라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빗방울이 그치자
기다리던 버스가 보인다.

시선은 버스에 고정시킨 채
‘먼저 가게되어 유감이네요’ 라고 독백을 한 뒤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

순례자의 지팡이 내 라이카

이제와서 내 라이카 카메라를 판다고 얘기하면
다들 ‘왜 이제와서 팔려고 하냐, 팔려면 일직 팔지 그랬냐?’
이런식의 반응이다.
약 2년쯤 전, 그때는 정말 이 카메라를 간직 하고 싶었다.
사실 지금도 팔려고 마음 먹긴 했지만 많이 흔들리고 있다.
이 물건은 나에게 정말 많은 것을 주었다.
나의 지나온 날들의 발자취를 더욱 선명하게 볼 수 있게 해 주었고,
심란했던 그날밤 날 달래 주던 하늘의 별빛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웠던 그 저녁의 석양
나의 모든것을 감싸주었던 용서의 바다
순백의 아름다움이 세상을 덮던 지난 겨울
밤새우며 서로의 꿈에 대해 얘기했던 몽환의 밤
추억의 순간들을 영원속에 가두어준 카메라는
나에게 있어 충실한 순례자의 지팡이 같은 존재였다.
카메라가 남긴 사진이
단지 빛과 전기의 부산물일 뿐이라고 치부해 버릴 수 도 있겠지만
내눈이 보는사물과 카메라가 보는 사물이 하나로 합쳐지는 순간
카메라의 심장으로 부터 뿜어낸 그림 에 대해 큰 감사를 느꼈었고,
그에대한 보답으로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이런 변변치 못한 글 몇자 적으며 추억하는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에필로그
내 카메라를 경매 싸이트에서 만족할 만한 가격에
사겠다는 여러 사람들에게서 연락을 받았다.
그러나 망설이던 나는 결국 카메라를 팔지 못했다.

아직은 보낼때가 아닌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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