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ery Short Stories

(64 / 2017. 10.)
어둠 속에서 스스로 벗어날 수 있다고 착각하지 말어라.
이미 어둠에 적응한 눈이 지금 너는 어둠에 있는게 아니라고 속삭일테니.

다만, 찾아오는 빛을 거절하지 말어라.
그 때가 유일하게 벗어날 수 있을 때일지도 모르니.

(63 / 2017. 10.)
사람의 말과 약속을 믿기 시작하는 순간, 불행의 전조.

(62 / 2017. 10.)
정상의 삶에서 비정상의 삶, 비정상의 삶에서 정상의 삶.
어떤 것이 쉬운가. 당연히 전자.

(61)
아프니, 겸손해진다.

(60)
어떤 여행이든, 모든 여행은 사람을 성숙하게 만드는 일종의 ‘성장 영화’.
소년이여, 여행을 떠나라.

(59)
우리는 정의를 갈망하지만, 정의로운 사람이 나타나면 심히 불편해 한다.
우리 안에 숨어있는 불의함을 지키기 위해서 일까? 내가 먼저 그렇게 하지 못해서 시샘이 나는 것일까?

(58)
한 사람이 세상을 떠나고 사람들은 슬퍼하고 그렇게 시간이 또 지나간다.
아무렇지 않은 척 삶 바로 옆에 서 있는 죽음이라는 친구를 애써 무시한다.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당연스레 내일이 주어질 것이라는 착각 속에 침대에 누워 눈을 감는다.”

(57)
“레트로와 촌스러움의 차이가 도대체 뭐에요?” 라고 한 학생이 손을 들고 물었다. 교수는 오른손으로 안경테를 만지작 거리다가 운을 뗀다.
“에.. 우리가 3주 전 SNS를 통해서 봤던 글과 사진들이 기억나지?” 학생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레트로와 촌스러움은 주관적인 감정일 수 밖에 없고, 그 간극은 종이 한 장 차이라네. 하지만 우리가 전에 봤던 그 글과 사진들을 기억해보게. 이 강의장에 모인 우리들의 80퍼센트가 촌스럽다고 동의하지 않았던가?”

“다시 말해 레트로와 촌스러움의 차이는 주관적인 느낌 차가 맞긴 하지만 어느정도 객관적인 느낌으로도 표현이 가능하다는 말일세. 이 말이 어려우면 아까 말한 그 글과 사진들을 상상하면 될 것 같네. 다만 문제가 있다면…”

“그 글과 사진들의 원작자는 본인의 콘텐츠가 촌스럽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다는데 있네. 당신은 복고의 매력을 뽐내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남들은 촌스럽다고 비웃는 꼴이니 말일세.” 교수가 말을 마치자 강의장 곳곳의 학생들이 키득거렸다.

(56)
주로 얼굴을 맞대고 귀를 맞대로 말로 표현하던 감정과 느낌들을 인터넷, 스마트폰 때문에 이렇게 글로 표현하게 된 순간부터 -감정을 논리로 풀어쓰게 되면서- 공감력을 상실한 사람들이 되어버린 것일지 모르겠다.

바야흐로 공감력 부재의 시대.

기술의 양면성 덕분에 내가 피해자가 아닌 이상은 피해자를 힐난하고 비난할 논리적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착각하는 사람들. 그런 시대에 살고 있다.

(55)
감정표현을 쉰다는 것은 생각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생각한다는 것은 감정에 대해 정리하는 시간을 갖다는 것을 뜻한다.

정리가 끝났을 때, 그 감정에 변화가 없다면, 어느 정도 그 감정이 진심이라고 스스로 믿고, 행동할 수 있게 된다.

물론, 이렇다 하여도 상대방이 이러한 진심을 받아들일지 말지의 문제가 남아있게 된다. 진심은 통하기 마련이라지만, 표현이나 방법도 분명 중요한 법이니 앞으로가 더 중요해진다.

이러나 저러나 오늘, 네가 보고 싶었다. 많이.

(54)
가을바람엔 확실히
떨림과 설렘이 담겨 있다.

(53)
꿈 속에서.
당신의 마음을 훔치고.
당신의 입술을 훔치고.
당신의 몸을 훔치고.

정작 깨어나 보니,
도둑맞은 것은 나의 마음.

(52)
나도 사람이다. 너도 사람이다.
그러나 통하지 않는 우리.

어쩌면 우리는 같은 탈을 쓴 다른 종족.

(51)
그녀는 우주 사진을 볼 때면 두려움에 사로 잡혔다. 그녀는 끝 없이 깊은 무한함에 대한 두려움이라 말했지만 실상은
무한해 보이지만 결국 유한하게 끝이 날 우리의 관계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50)
현실 속 실체를 마주한 이들과 가끔 다투고 토라지더라도 더 뜨겁고 깊게 관계하는 편이, 아무 사진/글이나 올려 보여주어도 예쓰만 외치는 수컷들이 득실거리는 이 곳 보다는 더 힘들고 여기가 그립겠지만 그 편이 훨씬 그대에게 나을거에요.

(49)
비가 내리는 길을 걸을 때면 흙을 이겨내고 나온, 내 신발에 밟혀 꿈틀 거리던 지렁이.
그 녀석이 사라진 순간, 그 시대가 간직한 그리움도 기다림도 낭만도 사라져 버렸다.

(48)
“실용”과 “멋” 이라는 말은 물질세계에서는 공존하는 척 정도는 할 순 있지만, 사람의 성향에서는 공존하기 참 힘든, 이질적인 것 아닌가 하는 생각.
대체로 실용적이면 멋이 없고, 멋이 있으면 실용적이지 못하다.
당신은 어디에 가까운 사람?”

(47)
에~오늘은 발표를 짧게 진행하겠습니다. 이런말도 발표를 길어지게 하는 것이니 자중하도록 하겠습니다. 아이쿠 이런 방금 그말이 발표를 길어지게 만든셈입니다. 죄송합니다. 반복되지 않도록 주의를… 아 이 말도 안하는게 낫겠지요? 제가 또..

(46)
“이것 좀 먹어, 꼬마 토마토.” 남자가 빠알간 방울 토마토를 건네며 말했다.
여자는 “뭐어? 하하. 너무 귀엽다. 꼬마 토마토라고 불러어?”
머리를 긁적이며 남자도 여자를 따라 배시시 웃었다.
여자와 남자가 사랑에 빠지는 순간이었다.”

(45)
가을이 되고 나서야 여름을 그리워하는 것, 한 여름에 한 겨울 내리는 눈을 꿈꾸는 것.
과거를 추억하고 장미빛 미래를 고대하는 이 인간의 본능이 현재, 현실의 것들 또는 당신을 소중히 여기지 못하고 막 대하게 하고 있는 것 아닌지.

아이러니 하게 이런 군상들의 모습을 개그 프로그램의 한 코너에서 통찰있게 담아냈다.
결혼을 꿈꾸는 총각. 가족과 함께 했던 시간들을 그리워 하는 기러기 아빠. 총각과 기러기 아빠를 부러워하는 평범한 가장.

그래서 오늘, 지금 당신과 함께일 수 있다면, 같이 있는 시간 동안 당신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내 마음을 전하고, 당신의 마음을 내 눈에 가득 담아 두고 싶다.

(44)
어떤 것, 경험, 사람은 추억으로 남겨놓는 편이 낫다. 평생 가슴 속에 아름답게 남겨 기억할 수 있도록.

그런 것들은 집착하는 순간 추해지고 추억도 얼룩지고 더러워지는 법이다.

(43)
남자는 머리카락을 정돈해주며 그녀의 얼굴과 입을 관찰하다 그녀의 손과 혀에 굴복하고 이윽고 절정에 도달한다. 그녀는 남자의 손을 이끌어 욕실로 들어가 정성스레 비누칠을 하고 물로 씻겨낸다.
그렇게 오전을 보내고 카페에서 나른한 오후를 보낸다.

남자는 기억 더듬기를 끝내고 손에 든 전화기를 만지작 거린다. 남자도 모르게 한 숨이 새어나온다.
그리곤 한손으로는 읽던 책을 다시 집어들고 무릎에 머리를 대고 누워있는 다른 그녀의 머리칼을 부드럽게 매만지며 엷은 미소를 짓는다.

(42)
어쨌든 살아 있음으로, 오늘도 아파면서도 기쁜, 환희의 순간이 언젠가 찾아올거라는 기대와 희망을 가지고 삶을 살아낸다. 그 기대와 희망을 잃지 않도록 힘을 북돋아주는 사람을, 친구라고 부른다.

(41)
직접, 직설적으로 말하지 않고 소통할 때의 짜릿함과 설렘이 있기 마련이다. 마음이 통하고 있다는 증거.
사실 사람은 몸보다는 마음이 통할 때 지속가능하고 진정한 안정감을 느끼게끔 설계되어 있다.

마음 없이 몸을 섞고 나눈 뒤 모든 것을 배출하고 나면 찾아오는 허무함을 경험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그 허무함을 부정하려 억지로 마음을 구겨넣는다. 결국 남는 것은 반복되는 허무와 불행.

물론, 마음이 간혹 통하게 되는 경우도 있지만.
우리는 몸만 가지고 감각적으로 행동하는 금수와 같은 존재가 아니다.

(40)
붉은 카펫 위에서 그대와 춤을 추어요
서로 눈맞춤 하며 발과 마음을 맞추며

붉은 카펫 위에서 그대와 춤을 추어요
실오라기 걸치지 않은 본연의 모습 그대로

붉은 카펫 위에서 그대와 춤을 추어요
오늘 이별한다 하여도 후회하지 않을 밤을 위해

(39)
사람은 솜털같은 권력이라도 가지고 있으면 행사하고 싶어하는 법이다.
여기, 이 곳은 여자라는 성별 자체가 권력을 가지고 있어 여자의 몸을 바라는 남자 위에 군림한다. 수컷들은 권력 역전을 꿈꾸며 잠시 굴복하는 척 여심 잡기에 여념이 없다.

(38)
비겁한 남자들은 책임과 헌신이 필요하게 되자 슬금슬금 회피하더니 도망가기 시작했다. 아마 평생을 그렇게 호기를 부리다 그런 순간에 봉착하면 비겁하게 살게 되겠지만 그들은 그들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잊으려 오늘도 최면을 건다.

(37)
망자의 초상을 말 없이 눈만 꿈뻑거리며 한참을 바라보다가 이미 가지런한 명패를 다시 정돈하는 남자의 뒷모습에서 알 수 있었다.

정말 진정으로 사랑했다는 사실을.

(36)
등을 맞대어 완전히 결합한다. 태고의 평온함과 안정감 속에 잠에서 깨어난다. 무채색으로 변해버린 마른 꽃이 있는 꽃병에 화사한 꽃을 바꿔 꽂는다. 커튼을 걷자 들어오는 햇살에 먼지를 털어낸 빈방에 드디어 활기가, 생명력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35)
외로움과 고독을 구별해내지 못하면,
외로움 속에서 허우적 거리다가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잡은 지푸라기 때문에 익사할 수 있으니 조심하십시오.

(34)
형형색색 화려한 삶의 옷들을
검은 넥타이 맨 검정 옷이 헤치고 나아간다.

삶의 바로 옆 방,
죽음과 애도의 방으로
살아있지만 죽은 옷이
어슬렁 눈물을 훔치며 들어간다.

언젠가 우리가 머물게 될 그 방으로.

(33)
끊기는 대화. 눈보다 스마트폰 액정. 형식적인 맞장구. 늘어나는 친구들과의 약속, 하품, 잠. 취향의 차이. 이견. 패턴화 되는 데이트(밥-커피or술-…). 나른함과 지루함. 부러운 친구커플. 왠지모를 외로움.
– “권태 혹은 이별의 징조”

(32)
누구나 본의 아니게 지나칠 때마다 마음이 콕콕하고 쓰려 오는 곳이 있기 마련이다. 옛 연인과의 추억이 아스라이 남아있는 거기.
거기서 우리는 설렜었고 행복했었고 싸웠었고 화해했었고 안았었고 뜨거웠었고 그리워했었고… 헤어졌었다.

어쩌면 헤어지는 순간마다 가슴 한켠에 가시가 자라나서 평소에는 가만히 있다가 그 연인과의 추억과 연관된 것들이 나타날 때마다 숨겨져 있던 가시가 마음에 문을 두드려 옛 연인들을 추억하게 하는 것일지 모른다.

(31)
창문 사이로 살금 새어 들어오는 아침의 빛깔에 우리의 몸도 빛나고 있었다. 햇빛에 유난히 보슬거리는 수풀을 만지작 거리다 손가락을 오므려 수풀아래 물의 근원이 있는 샘에 살며시 집어 넣는다. 따뜻함이 손가락을 타고 온몸에 전해져 온다.

플라톤이 (향연)에서 주장대로 마음의 불안하고 불안정한 상태를 회복하는 길은 이 빛깔 아래 몸을 결합하여 완전해 지는 것 뿐이기에게 오늘도 아침 빛깔에 몸을 맡기고 결합의, 완전의 춤을 춘다.

(30)
설렘인지 사랑인지 헛갈리는 순간 생겨나는 불행의 씨앗. 주로, 설렘을 사랑으로 착각할 때.

(29)
“만약 오늘 노래, 딱 한 곡을 들을 수 있다면 어떤 노래를 들을 것 같아?” 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

My Song (Keith Jarrett, 1978 Live) http://youtu.be/-7t1Ud4czmw

(28)
밀란 쿤데라가 정체성에서 주장한 “사랑은 서로에게 집중하고 서로의 자존감을 세워주는 것”이 유효하다면, 관계의 균열은 둘 중 하나가 더 이상 상대에게 집중하고 관심을 주고 자존감 높여주는 것을 포기했음을 의미한다.

우리가 경험한 많은 이별은 우리 마음에 생채기를 남겨 영원히 나에게 관심을 쏟고 내 정체성을 확립해줄 누군가가 이 세상에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한 결말에 도달한다. 그 결과 마음만 나누거나 몸만 나누는 연인이라는 변종의 관계가 탄생한다.

정체성에서 재회한 연인이 마지막에나누는 대화는 이상향에 불과한 것일까?
그는 몸을 조금 일으켜 입술을 그녀에게 대려고 했다. 그녀는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그냥 당신을 보기만 할 거야. 밤새도록 스탠드를 켜 놓을 거야. 매일 밤마다.”

(27)
이성의 관심을 얻기 위해 반복적으로 나열되는 문장들의 조합은 말 그대로 관심이 필요하다는 더 나아가서는 사랑이 부족한 애정결핍의 일종에 불과하다.
어떤 사람도 그 부족함을 반응으로는 채워줄 수가 없다.

일정한 반응을 받게 되면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반응을 바라게 되기 때문이다. 누가 그 부족함을 단순한 손가락 놀림으로 채워줄 수 있으랴.

참, 참신하고 기발한 반응으로 일정 시간은 그 결핍을 채워주는 냥 착각하게 할수는 있다.

(26)
fantasy가 reality가 되고나면 부질없음과 허무함으로 남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오늘도 아직 남아있는 fantasy가 reality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품은 채. 이렇게. 지금. 이 순간.

(25)
달빛을 피해 공원 벤치에 포개어 앉아 손을 옷 안쪽으로 살며시 넣어 가슴에 닿을락말락 보드라운 살결을 만지작 거리다 뜨거운 키스를 나누고 입김을 나누고 어느새 손은 가슴을 감싸고 새어나오는 소리를 참아내어야 했던 어린날 달빛 아래의 추억들.

(24)
행복한 순간에 불행을 걱정하고, 불행한 순간에 행복을 꿈꾸는 것은 스스로 구원하지 못하는 존재의 숙명인가?

(23)
따뜻한 사람이 그리워 그런 사람을 만나면 이내 실증이나 쿨한 사람을 찾게 되고, 다시 쿨한 사람을 만나면 다시 따뜻한 사람이 그리워진다.. 우리 마음 속에 근원적으로 숨겨져 있는 청개구리 심보를 뛰어넘게 하는 그 사람이 우리의 사랑, 구원.

(22)
헤어지는 순간 등을 보였던 그 사람들에게 우리는 얼굴을 남겼다. 그 사람을 더 사랑한다는 이유로. 누군가에게는 엘사보다 더 차가운 뒷모습을 보이고 이별하기도 했다. 어쩌면 우리를 더 사랑했던 사람들에게.

이러나저러나 우리는 서로 마주보고 행복에 겨워 영원을 쫓아 웃을 수 있을 그 사람을 오늘도 찾아 나선다.

(21)
연인으로든 뭐로든 친밀한 관계가 이루어지기 전에 생기는 묘한 긴장감과 설렘에 중독된 사람이 있다.
이뤄진 관계 속에서 생기는 여유와 안정감을 지루함으로 단정하고 내 감정이 변했노라고 속단하여 오늘도 상대방에게 이별하자는 메시지를 보낸다.

긴장감과 설렘을 찾아 오늘도 새로운 이성을 찾아 어기적 어기적 방황한다. 이 사람은 이러한 태생적 결핍을 무엇으로 채울 수 있을까?

(20)
출근인파로 북적이는 지하철에 백팩을 멘 빼빼 마른 여자 -그 때문에 신경질적으로 보인다-가 굳이 인파를 헤치고 지하철 앞쪽으로 어기적 어기적 걸어가고 있었다. 치이는 사람들은 불쾌한 기분을 ‘째려봄’으로 드러냈지만, 그녀는 개의치 않았다.

30분 전 여자는 남자의 문자를 받았다. “이제 그만하자. 연락하지 말아줘 이제.” 여자는 동공과 다리에 힘이 풀려 그 자리에서 풀썩 주저 앉고 만다. 전화를 걸어봤지만 남자는 전화를 받지 않는다.

정신을 겨우 차리고 출근길 버스에서 갑자기 내린다. 버스 안 사람들이 알수없는 동정의 눈빛을 보낸다. 여자는 택시를 잡아 타고 OO지하철역으로 가자고 한다. 남자가 출근길에 규칙적으로 이용하는 지하철을 타기 위해서.

여자는 택시에서 남자가 이용하는 지하철 노선과 시간을 확인 하고 그 시간에 맞춰 지하철에 탄다. ‘맨 뒷칸 부터 앞칸으로 가면서 찾아보자, 일단 만나서 얘기하면 상황이 달라질거야.’ 치이는 사람들을 아랑곳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그 와중에 나를 밀치고, 옆사람을 밀친다..

이렇게 생각하고 나니 마음이 한순간에 편해져 그 여자에게 괜한 동정심까지 생겼다. 나는 다시 빠진 이어폰을 귀에 꽂고 눈을 감고 음악을 듣는다.

(19)
혼잡한 지하철에서 오른쪽으로 눈을 돌렸다. 바둑판 무늬의 아이보리색 자켓에 검은 바지를 입고 머리에 비녀를 한 여인이 앉아있었다. 마치 과거에서 타임머신을 타고 온 것 같았다.

왼쪽으로 눈을 돌리니 눈 사이가 멀고 긴, 스모키 화장을 한 여인이 앉아있었다. 마치 미래에서 온 듯한. 여자는 자기도 모르게 한숨을 쉬고 본인의 차림새를 볼겸 반대편 창문으로 살펴보았다. 과거-현재-미래가 같은 공간에 있는 느낌이었다.

(18)
“헤어진 여자친구가 찾아온 적 있어요?”
남자는 “응 있지.” 라고 답한다.
“아, 그때 어땠어요?” 남자는 다시 오래된 기억을 더듬 듯이 뜸을 들였다.
“글쎄… 많이 힘들어하는 것 같아서 그냥 위로만 많이 해준 것 같아.”

남자는 이어질 대화를 짐작할 수 있었다.
남자는 그런 여자의 마음을 해치기 싫어 막연하게 대답했던 것이다.

밤 늦은 시각, 술에 취한 옛 연인이 집 앞을 찾아 올 때마다 느끼는 감정들이 있었다. 옛 추억들 그리고 나도 모르게 느껴야만 했던 우월감과 동정심.

남자는 끝내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여 말한다. “에이, 이제 전 남친말고 그럴 땐 나를 찾으면 되잖아.”

(17)
“오늘 봐야겠어” 라는 A의 말에 남자는 바로 회사 화장실로 달려가 세수를 하고 로션을 바르고 심지어 편의점까지 가서 왁스를 사와서는 머리를 정돈하느라 야단법석을 떨었다. 약속시간 30전. A에게 문자가 왔다. “미안, 오늘 약속 취소.”

실망한 남자는 시무룩하게 카톡 친구목록을 엄지손가락으로 생각없이 올리다가 B를 발견, 바로 메시지를 남긴다. “오늘 볼래?” 남자의 메시지를 받은 B는 바로 회사 화장실로 달려가 화장을 고치고 심지어 편의점에서 드라이기를…

(16)
안타깝지만 당연하게도, 낯선 사람을 만나면 가장 먼저 외모와 복장을 알아차리고 나서야 그 사람의 인격을 알아보게 마련이다.

(15)
남자가 말했다.
“날이 추워졌죠. 그 덕분에 알량한 바람에 설레는 추남이 될 준비를 하고 있어요. 가을 바람만 불어대면 설레는 통에 가을에는 ‘금사빠’가 되는 것 같아요.”

남자는 건물에 들어서자마자 물기를 머금고 있는 우산을 건물 밖으로 탁탁 털어내고 우산살을 가지런히 모아 우산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순간 남자는 멈칫했는데, 이 ‘우산정리법’을 얼마 전 헤어진 연인에게 배운 것이기 때문이었다.

연인 또는 호감있는 사람의 행동이나 나눈 대화 하나하나가 상대방에게 소소한 또는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
우리는 그 순간 그 사람을 추억한다.

‘500일의 썸머’에서 탐과 썸머가 헤어진 후 탐은 썸머처럼 나쁜남자가 되고, 썸머는 탐처럼 순정파로 돌변하였을지도 모른다.

(14)
“야구 좋아해요?” 여자가 물었다. 남자는 뜸을 들이더니, “어.. 그. 조금 좋아해요.” 여자는 좋아하는 것이 꼭 같아서 기뻐했다. 남자는 야구라면 환장하지만 여자가 야구를 싫어하는데 물어본 것일까 싶어 집에 돌아갈 때까지 노심초사였다.

(13)

격렬한 관계 후 나른하게 남자의 팔에 쌓인 채 여자는 남자의 가슴을 손가락으로 오르락내리락 쓸고 있었다. 갑자기 생각난 듯 남자가 묻는다, “그때, 우리 처음.. 그랬을 때 뭐가 두려웠던거야?” 여자가 손가락을 갑자기 멈추더니 입을 열었다

“아 그때? 음… 네가 날 좋아할까봐 두려웠었어.” 남자가 다시 물었다. “지금은?” 여자가 고개를 들어 남자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지금도 그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남자는 고개를 들어 여자의 입술을 훔치고 한 손으로는 머리칼을 부드럽게 쓸어넘기며 움켜쥐고 두번째 관계를 시작한다.

남자는 여자가 두려워 한 그 사실을 부정 하기 위해 더욱 격렬하게, 애정을 담아 여자의 몸을 탐했다. 마음을 얻기 위해… 여자는 이 남자와의 섹스에서 남다른 쾌감을 느껴 계속 몸을 섞었지만, 아직도 두려워하고 있다. 마음을 빼앗길까봐.

(12)
별인지 인공위성인지 알 수 없는 빛을 바라보며 여자가 말했다. “웃기지, 아니 참 아쉽지 않아? 과거에 서로가 만난 이성에게 받은 상처들이 오늘 너와 나 사이를 가깝게 하지 못하게 막고 있다는 것 말이야.”
남자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11)
“꽃, 예쁜 꽃.” 남자가 혼잣말을 하듯 말하자 여자가 바로 맞받아친다. “응? 무슨 꽃?” 남자가 다시 말을 받아 얘기한다. “응, 너를 가만히 보고 있으면 예쁜 꽃 같아”.

여자의 궁금한 표정이 풀리고 남자의 어깨를 톡톡 치면서 환하게 웃으며 대답한다. “에이 안 믿어~.”

우리는 속고 속아주면서 서로의 감정을 확인하고 그 속에서 안도한다. 그리고 깊어지는 관계.
어쩌면… 역설적으로 이별을 종착역으로 달려가는 특급 열차.

(10)
비가 내리기 시작하자 여자는 영문모를 울음을 터뜨렸다. 조심스레 다가가 “울지 말아요” 라고 말하자 여자는 울음을 그치기는 커녕 더 크게 엉엉 울며 내게 말했다.
“다가오지 말아요. 당신을 보니 세달 전에 헤어진 남자친구가 떠올라요”
우물쭈물 거리다 “…다시 시작해볼까요?” 라고 말하자 여자가 울음을 뚝 그치고 말했다.

“또 NG에요?””

(9)
생명의 유한성과 비가역성 때문에 오늘도 사람을 꿈을 사랑을 돈을 섹스를 권력을 찾으러 떠난다.

개중에 상대의 유한한 삶 속의 영원한 기억에라도 내가 남을까 싶어 오늘도 사랑을 찾아 방황하는 무리가 가장 낭만적이다.

(8)
추억할만한 사람-싱그러운 햇살 아래 데이트든, 반짝반짝 빛나는 별빛 아래 몸섞음에 관한 것이든-은 우리를 미소짓게 하기도 하지만, 앞으로 만날 사람들과 그 사람을 늘 비교하게 되기에 우리를 슬프게 만든다.

그래도 더 좋은 추억을 쌓을 수 있는 기회가 있기에, 우리는 오늘도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만남을 기대할 수 있다.

(7)
뻔하디 뻔한, 지겨울 만큼 반복되는 출퇴근 길에서 우리는 운명을 꿈꾸지만 대부분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매 순간 매 만남마다 최선을 다하는 수 밖에 없는 것이다.

(6)
해가 점점 짧아지고 어스름한 밤을 달빛이 외롭게 비추고 있었다. 가을 바람에 갈대와 같이 이리저리 흔들릴 내 마음을 잡아보리라는 헛된 다짐을 하게 되는 시기가 오고 있다. 아니면 이 마음을 이리저리 휘저어줄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일지도.

(5)
갖지 못한 걸 갖고 싶어하고 막상 갖고 나면 내동댕이 치고 마는 인간의 본성. 사랑이 그 본성을 극복하게 해줄 수 있을까?

(4)
우리 모두는 고독을 즐길 줄 모르는 외로운 사람들. 외로움을 없애려 이성을 찾지만 채워지지 않고 외로움을 숨기려 센척 하지만 공허한, 홀로 방 구석에서 외로움을 어쩔 줄 몰라하는 그런 사람들.

(3)
당신은 내 어장 속 욕정 해소 물고기, 나는 누군가의 어장 속 파닥파닥 춤추고 돈내주는 물고기.

(2)
남자는 싸구려 욕정이 망치고, 여자는 같잖은 호기심이 망친다.

(1)
여자는 무모할 정도로 자신에게 헌신하는 남자를 보며 비합리적이고 비이성적인 행동들-예를 들면 쇼핑을 싫어하지만 내가 부르면 바로 나온다던지-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이런 행동들 때문에 이 남자를 사랑할 수 없다고 굳게 믿었다.

반면 여자가 좋아하는 남자에게 행하는 집착적인 행동들- 예를 들면, 주기적으로 어디인지 무엇하는지 궁금해하고 묻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 방법이 아니면 상대방에게 관심을 표현할 수 없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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