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유지

경유지에선 불안하다. 목적지까지 가야한다는 강박이 있는건지, 결국 거쳐갈 곳이라면 빨리, 잠깐 거쳐가 목적지에서 여유를 즐기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나보다.

다른 사람처럼 목적지야 가든말든 잠시 멈춘 경유지에서 주변도 둘러보고 순간을 누리면 좋으련만. 경유지에서 멈춰 ‘목적지야 뭐 어쩌다 보면 안갈 수도 있지,’ 라고 하면서 그 곳을 즐기면 좋으련만. “난 불안하다!”

꼭 경유지를 입력했는데도 “목적지를 벗어났습니다”라는 말을 반복해서 내뱉는 네이비게이션 같다.

왕산해수욕장에 가는 도중에 마시안해변, 갯벌에 멈춰섰다. 아이들은 진흙 속 게를 찾고 있고 아내도 그런 아이들을 도우며 지금을 즐기고 있지만, 나는 짐이 있는 돗자리에 앉아 글을 쓰고 있다. “이 곳을 즐길 수가 없다!”

목적지에 빨리 가거나, 아니면 이 곳이 목적지로 변경되었다고 내 머릿속에 입력해주길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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