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 어둠, 무감각 그리고 돌이킴

첫번째 어둠은, 알지 못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게 걷고 있었습니다. 휘황한 불빛 때문에 어둠인지 몰랐습니다.  아니, 사실 몰랐다는 것은 변명입니다. 이런 어둠 쯤이야 언제든 물리칠 수 있다고 자만했습니다.

두번째 어둠은, 어둠의 끝과 같은 암흑인 줄 알았습니다. 암흑 속에서 걷고 걷고 또 걸었는데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불안했고, 나중에는 용감했습니다. 처음에는 한걸음 나아갔다 다시 반걸음을 거뒀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났나 두리번거렸습니다. 밝은 쪽을 향해 소리도 한번 쳐보았고 보기도 하고 듣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자’ 앞으로 두걸음 나아갔습니다. 그리곤 한걸음을 돌아와 다시 주변을 살폈습니다. 더이상 소리 치지도 보지도 듣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뒷통수가 꽤 간지럽긴 했지만 앞으로 성큼성큼 나갈수 있었습니다.

세번째 어둠은…  그런 어둠이 있는지조차 몰랐습니다. 암흑 속에 오래 있다보니 눈이 적응을 해버려 암흑이 어둡지 않았던 것입니다. 눈속임에 제 스스로 속아 여기저기 뛰어다니다 보니 이보다 더 좋은 세상이 있을까요. 완전하게 자유로운 사람이 된 듯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이상 소리치지 않았고 누구도 찾지 않았고 제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옳다고 믿었습니다.

그러자 일들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영혼은 혼수상태에 빠지고, 몸도 아파왔습니다. 내 힘이 아닌 도움으로 이뤄졌던 일들이 오롯이 내 몫이 되면서 문제가 생기고 주변의 시선도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그제서야 알았습니다.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 같은 그 시간은 믿어주는 시간이었습니다.아이를 키우다보면 같은 잔소리를 계속 하는 것이 ‘너를 믿지 못해’라는 메시지를 주는 것 같아 일단 지켜보는 경우가 있는 것처럼, 스스로 깨우쳐 돌이킬 수 있는 기회의 순간이었습니다.  그 사이 나와 내 주변은 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무감각해진 영혼은 제 삶에 대한 통제권을 잃어버리고, 분별하지 못하고 어둠이 바라는 대로 생각하고 행동해 버린 것입니다. 그러다 암흑의 그 다음 어둠까지 빠져버린 채 고통받는 것을 고통인지 모르고, 힘든 시간을 힘든 시간인지 모르는 그런 상태가 되어버렸던 것입니다.

 

그러다 보게 되었습니다. 완전히 망하게 하지 않고, 내버려두지도 않고, 다시 기회를 주는 빛을. 그리고 다시 한 번 그곳을 향해 몸과 마음을 돌이켜 나아가 봅니다. 세번째 어둠을 경험했다는 그것으로 자랑을 삼아서는 더 극심한 어둠을 겪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제 힘으로 빛 안에 살아온 것이 아니란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닫고, 다시 돌이킴의 출정을 합니다. 또 다시 염치없이 그래야만 합니다. 무감각한 영혼과 육체 속에서도 그래야 제가 사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기 때문입니다.어둠속에서 행한 모든 일들을 다시 깊이 묻어 주시고, 다시 어둠에 빠지려 할때 손을 꽉 잡아주시길 이 순간 다만 바랄 뿐입니다.

입원.

온유와 병원놀이를 했다. 나는 의사 역할을 맡아 진단과 처방을 했다.

몇 명은 약 처방, 몇 개는 입원을 시켰다.

 

그리고 나서 역할을 바꿨다.

여러 장난감에게 청진기를 대면서 약 처방을 해주더니,

“음~ 오번 하셔야겠네요~” 라고 말했다.

 

“오번이 뭐에요 의사 선생님?” 라고 반문하니,

“이번보다 더 심해서 오번해야 돼요!”

 

아, 그제서야 알았다, 여태 온유는 입원을 이(2)번으로 알고 있었구나!

 

이(2)번이 아니고 입.원. 이라고 의미를 다시 설명해 주었지만,

그 다음 장난감은 경미한 부상으로 일번을 했다. 참 다행이었다.

살기 위해, 글을.

살기 위해 앞으로 이곳에 글을 쓰지 않으면 안된단 생각이 덜컥 들었다.

사실이다. 글을 써야 한다.

보고서가 아닌 글을.

여기에.

자주.

 

형식, 그리고 위로.

출근하자마자 스마트폰에서 진동이 왔다. “소식 들었니? OO 아버지가 사고로 돌아가셨대”

순간 머릿 속이 멍해졌다가 OO얼굴 아른거렸다. 20대 초반에게 아버지의 죽음이 어떻게 다가왔을지 상상이 안됐다.

낮 시간에는 일에 정신이 팔려 잊고 있다가 퇴근 시간이 가까와 오자 다시 OO의 얼굴이 아른거렸다. 얼마나 슬펐을까. 실감이 날까. 얼마나 많은 눈물들이 볼을 스쳐 떨어졌을까.

퇴근길에 장례식장을 들렀다. 접객실에는 여느 장례식장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20대의 앳된 친구들이 OO를 위로하러 삼삼오오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고, 조용한 이야기 소리와 음식물을 씹는 소리가 정적을 깨고 있었다.

 

조문을 했다.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직업군인, OO의 오빠가 상주가 되어 조문객에게 일일이 인사를 했다. 헌화를 하고 묵념을 했다. 그러곤 가만히 고개를 들어 상주와 목례를 했다. 같이 조문한 일행이 물었다.

“어떻게 된 일이었어요? 상심이 크시지요?”

짧은 머리의 상주는 일일이 어떤 일로 돌아가시게 되었는지 설명했다. 얼마나 많은 조문객들이 물었고, 묻고, 또 물을까.  대답할 때마다 사고의 순간이 얼마나 사무칠까.

접객실에 앉아서 내어온 음식을 가만히 씹었다. 깊은 슬픔의 적막속에 차오르는 포만감에 나의 허기가 민망했다.

“더 드릴까요?”

나의 마음을 알아챈 듯한 질문에 마음이 붉어졌다. 사양을 하고 가만히 앉아서 흘러가는 이야기를 들었다. 비슷하게 돌아가신 분의 이야기.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의 근황.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다가 사고의 순간을 생각하고, 그 소식을 접한 순간을 생각하고, … 이곳까지 흘러온 순간을 상상하다, 괜히 마음이 울적해졌다.

 

몇 분쯤이 지났는지 교회분들이 조문을 줄지어 오기 시작했다. 위로예배를 드린다고 했다. 이윽고 예배를 집전할 목사가 모습을 나타냈다. 상주가 분주해졌다. 빈소 맞은편에 있던 방을 들락날락했다. 목사의 공지가 시작됐다.

“오늘은 유족께서 예배를 원하지 않으셔서, 찬양을 제외하고 조용한 기도와 말씀으로 예배를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예배에 함께 하실 분들은 빈소로 모여주시기 바랍니다.”

아직 충격에 벗어나지 못한, 하루 아침에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미망인의 요구라고 했다.  ‘위로예배’로 위로를 받아야할 사람과 예배의 궁극적 대상인 하나님 사이 어딘가에서 간극이 느껴졌다.

사람들 사이에 휩쓸려 빈소에 들어갔다. 조용한 묵도와 누군가의 대표기도에 이어, 말씀이 이어졌다. 지금은 알 수 없지만 뜻이 있을거라는, 하늘에 소망이 있다는 그런 말씀. 그 와중에 방안에서 원치 않던 조용한 예배를 듣고 있어야 할 미망인의 모습이 스쳐지나갔다.

그리고 이어지는 다같이 하는 조용한 기도. 그 기도 가운데 오른쪽 어딘가에서 누가 들어도 상주의 울음이라는 걸 알 수 있을 정도로, 감히 위로할 수 없을 만큼 탄식이 담긴 울음소리가 빈소에 울렸다. 어깨를 쓰다듬어주어야 할까, 말 한마디 건네야할까 고민했다. 그러다 알량한 위로, 형식적인 위로로 비춰질 모든 행동들을 멈추기로 하고, 기도도 그친 채 울음소리를 묵상했다. 마음 한 구석이 참 슬펐지만, 상주만 할까. 유족만 할까. 내가 그 기분을 이해할 수나 있을까. 이해하지 못하면 위로할 수 없을까. 이런저런 쓸데없는 생각들이 스쳐가는 사이 예배가 끝났다.

 

그렇게 정해진 형식 위에서 말로, 또 말없는 위로들을 남기고 빈소를 나섰다. 상주의 울음은 위로를 받았기 때문일까, 아니면 단지 더욱 슬펐기 때문일까. 미망인의 마음은 어땠을까. 고유의 슬픔 위에서 지켜야할 형식들이 새롭게 만들어 내는 슬픔은 누가 위로해줄 수 있을까.

 

이 모든 답을 알고 있는 유일한 이가 진짜 위로를 전해주길 간절히 바라며.

 

길을 걷다가. 

아이를 재우러 아기띠를 매고 골목길을 어기적어기적 배회했다. 기분과 눈을 환기하기 위해 가능한한 몰랐던 길, 새로운 길을 찾아 이 골목 저 골목을 뒤뚱거리며 쏘다녔다.

갤러리가 딸린 커피가게, 아니 커피숍이 딸린 갤러리, 요란한 음악을 막 틀어놓은 펍, 자전거 병원, 아기용품과 애견용품을 같이 파는 가게, 어김없이 모퉁이를 차지하고 있는 편의점, 타투가게, 또 커피가게, 막 생긴듯한 우동집.

그러다 코를 찌르는 본드냄새가 진동하는 곳을 지나쳤다. 본능적으로 미간을 지푸리고는 발걸음 속도를 늦추고, 냄새나는 곳으로 스윽 쳐다봤다. 분재집인지, 커피가게인지, 빵집인지 알수 없지만 개점을 준비하고 있는 듯 한 풍경이 펼쳐졌다.

그 조그마한 가게 안 한 가운데 어둑한 조명 속에 주인인 듯한 부부가 앉아서 유리에 붙일 인테리어 장식에 접착제를 바르고 있었다. 길다란 검은색 업소용 선풍기가 부부 옆에서 달그닥 돌아가며 땀을 식혀 줬다.

아내로 보이는 여성은 희미하게 웃으며 장식재를 붙잡고 있었고, 남편일 남성은 송글송글 맺힌 땀을 개의치 않고 열심히 쓱쓱 접착제를 발랐다.

순간 남성분이 고개를 들었고 어느새 발걸음을 멈추고 있던 나와 눈이 마주쳤다. 서로 민망함을 감추고 남성은 땀을 닦고 나는 눈을 길로 향하고 발걸음을 다시 옮기기 시작했다.

뭘까. 그 광경을 보는 순간 나를 스쳐간 생각과 감정들은. 나도 나의 일을 하고 싶다. 잘할 수 있을까. 부럽다. 자금은 어떻게 마련했을까. 근데 뭐하는 가게일까. 원래 어떤일을 하다가 하시게 됐을까. 나도 내일을 하면 참 잘할텐데. 근데 실패하면 어쩌지.

 

그리곤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하고 스마트폰 메모를 열어 미친듯이 글을 쓴다. 그러고 나서 지금에서야 생각한다.

 

아 이렇게 생각이 너무 많아서, 시작조차 하지 못하는구나. 에이그.

아이가 마침내 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