냄새, 그리운 냄새.

 

나는 후각이 예민한 편이다. 손으로 피자를 집어 먹고 손가락 끝에 남아 있는 피자냄새를 사흘정도 맡을 수 있을 정도다. – 어쩌면, 손가락을 비누에 박박 문질러 완벽하게 닦아내야 하는데, 그걸 못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난데없이 냄새 얘기다. 문득 아프리카 대륙의 에티오피아 사람의 냄새가 ‘기억’났다. 우리나라 사람은 마늘 냄새가 나고, 미국 사람은 치즈 냄새가 난다는 얘기가 있듯 식습관이나 거주환경 심지어 직업에 의해 체취가 달라지는 것 같다. -박찬호는 마늘냄새를 없애기 위해 일부러 치즈를 날마다 엄청 먹었다고 하는가 하면, 어떤 사람 친구가 초콜릿 공장에 다니는데, 그 분을 만날 때면 멀리서 날아오는 초콜릿 냄새로 미리 도착 사실을 알아채곤 한다고 한다!- 내 경험에 의하면 일본 사람에게선 나무냄새랄까, 풀냄새랄까, 차냄새랄까? 아무튼 뭔가 다다미에서 날법한 냄새가 난다. 와이프는 인도 사람들에게선 몸에 붙이는 파스 비스무리한 냄새가 나는 것 같다고 한다.

그럼, 아프리카 사람에게선 무슨 냄새가 날까? 내 ‘기억’으로는 뭔가 코를 톡쏘는 듯한 조금 매운 냄새가 났던 것 같다. 막 눈이 따가와서 못견디고 불쾌할 정도는 아니고 약간 처음에 눈을 찌푸렸다 다시 원래 표정을 지을 수 있을 정도의 가벼운 매운 냄새. 몇 주간 그 곳에서 생활했는데도 그 냄새의 기원은 찾지 못했다. 다만, 난데없이 ‘기억’난 냄새 덕분에, 에티오피아가 문득 그리워진다. 다시 그 냄새를 코로 직접 킁킁 맡고 싶어졌다. 다시 가게되면 냄새의 기원을 찾을 수 있을까? -찾아서 어디에 써먹을까?-

그나저나 당신은 지금 기억나는, 그리워하는 냄새가 있나요? 그 냄새가 왜 떠올랐을까요?

에티오피아 홈메이드 커피.

어떻게 기둥을 이렇게 높이 세웠을지 궁금한, 천장이 꽤 높은 꼬깔을 씌워놓은 듯한 원형 천막 형태의 집에 들어서자 마자 이방인을 맞이하는 검은 피부- 사실 에티오피아 사람의 피부색은 검다기보다 커피색에 가까운 것 같다-의 주인은 낯선 언어로 자리를 권한다.

어설프게 현지 언어로 인사를 하고, 자리에 조심스레 앉아서 멀뚱히 하얀 이를 드러내며 ‘저는 좋은사람이에요’라는 신호를 보내자, 상대방도 나보다 더 하얗게 느껴지는 이를 드러내며 친근감을 표시한다.

바벨탑의 저주로 대화는 더 이상 이어지지 않고, 적막감이 익숙치 않은 나는 애꿏은 카메라만 만지작만지작 거린다.

이에 주인도 자연스럽게 자리를 떠나 돌덩이 두개 사이에 대충 풀떼기를 쑤셔넣고 불을 지피더니, 콩같은 걸 볶기 시작하고, 바로 옆 화로 같은 곳에도 불을 지피더니 무언가 끓이기 시작한다.

“아니, 여기에도 보약이 있는건가?” 라고 여행경험이 일천한, 편견 가득한 이방인은 혼자 지레짐작하고, 혼자 놀라고, 혼자 셔터를 눌러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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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막 대신 따닥따닥 풀 타는 소리와 뿌연 연기가 공간을 채우기 시작했고 간헐적으로 셔터 소리가 “칙~칙~” 거릴 때마다 카메라에 익숙치 않은 집 주인의 손동작이 멈칫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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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약탕기(라고 혼자 이름을 정했는데,)안에 물을 붓고 끓이는 줄 알았는데, 용기가 조금 달아오르자 물을 붓기 시작한다. 아직도 뭘 만드는지 전혀 짐작하지 못했다. (이 글 제목이 스포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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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도 끓고, 콩도 타닥타닥 볶아지고, 구수한 냄새가 나기 시작한다. 그제서야 이방인은 이 보약의 정체를 알아차린다.

혼자 호들갑을 떨면서 “오, 커피!” 라고 외치자 주인과 그의 가족들(이웃일지도 모른다)은 “분나!” 라고 맞받아친다. (암하릭어 분나 = 커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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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파는 프렌차이즈 커피맛 따위를 상상하며 들뜬 표정으로 가까이 가서 기웃거리고 있는데, 주인이 긴 풀떼기로 콩을 탕약기(이거 뭐라고 불러야하지..) 위쪽에 넣는다.

 

200601_ethiopia_coffee_5그렇게 몇 분이 더 흐르고 홈메이드 분나가 완성된다. 하얀가루가 들어있는 잔에 커피를 따르자 나도 모르게 박수를 쳤다. 가족들도 얼떨결에 같이 박수를 쳐주었다.

주인은 커피잔을 훑어보더니 이가 나간 커피잔은 가족에게 돌리고 가장 깨끗한 잔을 이방인인 나에게 쥐어준다.

형식적으로 눈을 지긋이 감고 향을 맡는 척 하며 “음~” 소리를 내자 주인과 그의 가족들이 아까보다 더 하얗게 된 이를 드러내고 웃어준다. (아 여기서도 개그가 통하는군!)

한모금 들이마시고, 생전 맛보지 못한 커피 맛에 동공이 확대되는 것을 느끼고 “분나, 빠땀 뚜루노!(=very good. 이 말이 아직도 머릿속에 왜 있는지는 미스테리)” 를 외친다.

주인과 그의 가족들(이웃인가?)이 나를 계속 신기한 생물을 보듯 쳐다보며 히죽히죽 좋아한다.

좋아하는 모습에 들떠 커피가 조금 식자 에스프레소에 익숙한 척 원샷을 한다.

이내 표정관리를 못하고 힘껏 찡그리고 말았는데,

그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아까 잔의 바닥에 있던 하얀가루의 정체는 바로 “소금”이었기 때문이다!

생전 처음 마셔본 소금…커피… 한번 시도해보시라.. 묘한 중독성이 있어서 에티오피아 여행 중간중간에 소금커피가 땡기기까지 했다. (지금도 땡긴다!)

에티오피아에 다시 갈 기회가 생긴다면, 홈메이드 소금분나를 꼭 다시 마셔보고 싶다.. 아, 집에서 시도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