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프랭크 :: Frank (2014)

 
 
사람들은 동경한다. 창조력이 넘치는 사람을 만나면 그 창조력의 부스러기라도 가지고 싶어한다.

행동을 관찰한다. 사고와 사상을 받아들인다. 선물을 준다. 호의를 베푼다. 이러한 일련의 작업을 통해 그 사람과 관계를 깊게 유지하면서 창조력을 모방하고자 한다.

그러다가 그 사람의 면면을 알아간다. 그리고 반응한다. “음 생각보다는 별게 없는 사람이군”, “아, 도대체 이런 사그라지지 않는 창조력은 어디에서 나오는 거지?” 등등.
 
 
희한한 가면을 쓰고 다니며 밴드의 모든 음악을 작곡하는 리더 프랭크씨.
(개인적으로 하는 짓이 독특하긴 하지만, 음악은 영… 별로다!)
음악 작곡능력은 토끼통만큼도 없는 존.
존을 일원으로 인정하지 않는 밴드 멤버들.
 
 
존은 프랭크를 동경하고 시샘한다. Wannabe FRANK 존. 그리고 생각하고 행동한다.

‘그와 친해지고 함께 생활하다보면 나도 창조력이 생기지 않을까.’
‘창조력의 비밀은 가면에 있는게 아닐까.’

존은 창조력을 훔치기 위해 시간과 돈을 ‘투자’한다.
계획은 존의 뜻대로 진행되는 듯 보이지만, 존의 작곡능력은 도통 늘지를 않는다.
 
 
그러다 알게 된 프랭크의 실체.

특이한 행동들은 정신병일 뿐이라는 것.
정신병이나 가면은 되려 프랭크의 음악적 재능을 막는 도구였다는 것.
 
 
존은 특별함이 사라져 더 이상 관계할 ‘필요’가 없는 프랭크를 떠난다.
그러나 가면을 벗은 프랭크 곁에는 있는 그대로의 프랭크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특이한’ 밴드 친구들이 있다.

그들이 프랭크와 함께 노래하고 있다. ‘I LOVE YOU ALL!’


 
 
문득, 사람과 사람 간의 순수하고 건강한 관계/공동체가 그리워진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들을 인정하고 편견 없이 목적 없이 받아들이는 공동체.
나보다 서로를 더 낫게 여기고 먼저 베푸는 공동체.

그 속에서는 특이하고 모난 성격이나 모습들도 조화로운 관계를 이루는 요소에 불과할 것이다. 토라짐도 잠깐 지나가는 소나기로 치부될 것이고, 날 선 비판도 서로를 위한 충고로 받아들여지지 않을까.

fin.

 

영화 인터스텔라 (Interstellar) – 너와 나의 연결고리는?

 
(주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게다가 글도 재미가 없어요!)

인터스텔라는 상대성 이론, 양자역학, 중력방정식, 블랙홀, 특이점 등(쓰면서도 뭔지는 모른다) 복잡한 물리 이론들이 난무하지만 <메멘토>, <인셉션>, <프레스티지>보다는 이야기 구성이 꽤 단순한 편이어서 영화를 본 주변 사람들의 호들갑에 비하면 이해가 어렵지 않다.

갈등 구조 또한 단순하다. 주인공인 쿠퍼 일가를 포함한 전 인류는 머지 않아 멸망할 위기에 처해있고, 그래서 이제는 구닥다리가 된 먼 옛날 개척정신을 다시금 발휘하여 인류, 아니 사랑하는 가족을 구원해야 한다는 것이 전부이다.

 

주인공 요셉 쿠퍼는 사랑하는 가족의 구원을 꿈꾸며, 아멜리아 브랜드는 연인인 에드먼드와의 재회를 꿈꾸며 대체행성을 찾아 우주여행에 나선다. 도일과 로밀리와 함께.

토성 근처의 웜홀을 통과한 후 밀러 행성과 만 행성을 지나면서 도일과 로밀리, 그리고 만 박사는 모두 죽고 쿠퍼와 아멜리아는 에드먼드 행성까지 가기 위해 블랙홀을 이용하기로 한다.

이 때, ‘5차원’이 등장하면서 탈 이성의 영역이 등장한다. 진보한 미래의 인류로 표현되는 ‘그들(유령)’의 도움으로 쿠퍼는 시공간을 뛰어넘어 과거의 자신과 머피(딸)에게 구원의 메시지를 보내고, 중력방정식을 풀 수 있는 특이점의 관측 데이터를 현재의 머피에게 전송하는데 성공한다. (너와! 나의! 연결! 고리!)

이내 5차원 공간은 닫히고 인류는 머피 쿠퍼의 도움으로 스페이스 콜로니로 이주 정착하여 플랜A로 구원 받는다. 쿠퍼는 우주공간을 떠돌다 토성 근처에서 발견되어 첫 대체행성 찾기 프로젝트명인 ‘나사로’처럼 부활하고, 아멜리아는 인류가 살기에 적합한 행성인 에드먼드 행성에 무사히 도착하여 죽은 연인을 기념한다.(플랜B도 성공한 셈이다)

 

(쓸데없이, 굳이, 이야기 흐름을 몇개 풀어 썼다.)
결국 영화는 인간을 구원하는 것은 다름 아닌 ‘의지적인 사랑의 능력’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래서 사랑을 믿었던 사람들 -쿠퍼, 머피, 아멜리아…-은 인류 구원에 기여하였지만, 사랑이 아닌 다른 것을 신봉했던 사람들-존 브랜드, 만 박사, …-은 죽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결국, 영화는 모더니즘(이성과 과학)으로는 도저히 해결되지 않는 구원의 문제를 포스트 모더니즘(신비)으로 도약한다.
이 때문일까? 나의 세계관과 영화의 세계관이 충돌하는 순간-블랙홀을 통과하여 5차원이 등장하는 시점-부터 이야기는 논리의 힘을 잃고(포기하고) 유령을 의지하는 신세로 전락하는 듯 보인다.

정말 인간의 ‘의지적인 사랑의 능력’만으로 우리는 구원받을 수 있을까?

세계관의 괴리와는 별개로 나에게도 아내와 아이가 생긴 탓인지 영화가 주장하는 사랑의 힘이 어느정도 전해져 왔다. 그리고 스크린을 압도하며 전해지는 우주여행의 신비감과 긴장감 그리고 역동성은 <인터스텔라>를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천하게 만든다.

(< 그래비티>의 정적이지만 긴장감 있고, 우아한(?) 느낌과는 분명히 다른 영상미가 있다.)

 

++ 사실 나는 2001년 남산 감독협회 시사실에서  <메멘토>를 접한 이후부터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팬보이다.